허솔지 입력 2021. 06. 13.
인터넷을 보면 가끔 '추억의 과자' 이런 제목의 글이 올라옵니다. 70~80년대 인기 있었던 과자나 아이스크림 사진이 있고 '이 제품을 알고 있다면 당신은 최소 30대, 또는 40대' 이런 식의 글과 함께요.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거죠. 그럼 혹시 이 제품, 아시나요?
'덕산 제과 왕돌이'는 한 때 '간첩 소동'을 빚기도 했던 70년대 과자입니다. (과자 봉지 겉면의 소년의 모습이 한반도를 닮았고, 북한의 지령을 담고 있다는 등의 소문이 있었다고 하네요.)
정가는 10원입니다. 40년도 더 된 이 과자 봉지가 발견된 곳은 어디일까요? 바로 며칠 전, 한강 하구 새우잡이 어선의 그물 속입니다.
■ 한강 하구 새우잡이 그물에서 나온 '서울올림픽 공식 라면 봉지'
요즘 한강 하구 쪽 바다에서는 새우잡이가 한창입니다. 이 부근에서 잡히는 중하 새우는 달큰하고 시원한 맛을 내 인기가 높습니다. 봄에서 초여름까지 잘 잡히는데, 어민들은 갈수록 시름이 깊어집니다. 바로 쓰레기 때문입니다.
취재진이 어민들과 함께 조업을 나가봤습니다. 새우잡이는 안강망을 쓰는데, 그물을 올려 수확물을 쏟아보니 정말 할 말이 없었습니다. 각종 비닐류, 스티로폼, 플라스틱이 새우와 뒤엉켜 있었습니다.
‘서울올림픽 공식 라면’이라는 설명과 호돌이가 그려진 라면 봉지
80년대 초중반 출시된 것으로 추정되는 아이스크림 봉지
비닐에는 앞서 보았던 70년대 과자 뿐 아니라 유통기한이 1987년 10월까지인 조미료 봉지, 서울올림픽 공식 라면 봉지, 아이스크림 봉지 등이 발견됐는데요.
이 아이스크림 제조 회사에 제품 출시일을 문의해보니 "1989년도 입사한 직원도 알지 못하는 제품으로, 80년대 초중반 제품으로 추정된다"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누군가의 달콤한 간식으로 소비됐던 제품 포장지가 짜디짠 바다 속에서 수십 년을 떠돌다 새우와 함께 물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 그야말로 '단짠'의 여정이었습니다.
■ 새우 30kg 잡는데 쓰레기 150리터…쓰레기 분류에만 4시간
취재진이 동행한 어선에서는 30kg의 새우가 잡혔습니다. 지금 새우 가격이 1kg에 8천 원 정도니까 24만 원 벌이였습니다. 그런데 새우와 함께 올라온 쓰레기가 60리터 자루로 2자루 반, 150리터나 됐습니다.
그러다보니 쓰레기 분류도 여간 힘든 일이 아닙니다. 손으로 한 번 걷어내고, 선풍기 앞에서 작은 비닐 조각을 날립니다.
그리고 바닷물로 세척을 하고, 집으로 가져가 또 일일이 비닐을 골라냅니다. 온 가족이 매달려도 꼬박 4시간이 걸리는 고된 일이지만, 뽀얗고 품질 좋은 새우를 안전하게 공급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죠.
■ "이런 상황에서 누가 새우를 찾겠어요" 하소연도 못 한 어민들
이 바다가 삶의 터전인 어민들은 지금껏 하소연 한 번 제대로 해보지 못했습니다. 새우 품질에는 전혀 문제가 없고, 오히려 더 꼼꼼하게 분류를 하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어민들조차 "누가 이 광경을 보고, 새우에 선뜻 손이 갈까요" 라고 말합니다. 관광객들이 몰리는 주말이면, 포구 입구를 막아두기도 했답니다. 판로가 막힐까 싶어 그저 조용히 쓰레기를 수거해서 버릴 뿐이었죠.
그런 어민들이 취재진에게 실태를 공개한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이제 더는, 버틸 수 없을 정도의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취재를 하는 도중에도 해양 쓰레기는 계속 떠내려왔습니다. 바다 위에서 수 미 터 길이의 배수관을 수거해 온 어민도 있었습니다.
그나마 이렇게 수면 위에 떠 있는 쓰레기는 수거가 가능합니다. 인천 강화군 초지대교 부근의 300미터 길이 차단막도 이런 부유물을 걸러냅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바다 속 비닐 쓰레기입니다. 현재로서는 걸러지지 않고 한강을 타고 바다로 유입되는데, 날씨와 물 속 상황에 따라 바닥에 가라앉았다 떠올랐다를 반복하면서 수 십 년을 떠다니게 됩니다.
1970년대 왕돌이가 2021년 6월 모습을 드러낸 것처럼 말이죠.
■ "하천에서부터 쓰레기 차단이 중요…부처 간 협의 시작돼야"
인천시는 해양쓰레기 저감 계획을 발표하고, 2025년까지 1,120억 원을 투입하기로 했습니다. 발생원 관리와 함께 수거·운반 체계, 처리 방식을 개선하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하천에서부터 쓰레기를 차단하는 대책이 시급하다고 말합니다.
장정구 인천시 환경특별시추진단장은 "지난해 해양폐기물 관리법이라고 하는 관련법이 생겼고, 하천에서 바다로 유입되는 쓰레기를 차단하기 위한 근거는 마련됐다"면서도, "실질적인 대책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시행령과 시행규칙 등 세부적인 지침이 필요하다"고 설명합니다.
바다는 해양수산부지만, 하천은 환경부, 하천변 도로는 국토교통부 등 관련 부처가 다른 만큼 부처 간 협의를 통해 실질적인 세부 지침이 마련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민들은 당장 장마철이 걱정입니다. 비가 많이 오면 어마어마한 쓰레기들이 떠내려오기 때문입니다.
당장 생계도 문제지만 어민들은 한 삶을 다 바친 바다가, 이렇게 망가진 것이 슬프다고 말합니다. 바다를 되살리는 일은 어민들만의 몫은 아닙니다.
지금 마신 커피의 일회용 컵, 과자 봉지를 제대로 버려야하는 이유입니다.
허솔지 기자 (solji26@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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