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개요2. 상세3. 조선에선?4. 사용 방식5. 현황
1. 개요
2. 상세
부싯돌의 마찰을 통해 점화약에 불을 붙여 격발하는 방식이며 장치의 기본 개념 자체는 16세기 말엽에 발명되었다.[3] 그러나 가격과 생산의 문제 때문에 점진적으로 보급되었고 매치락을 완전히 대체한 것은 17세기 말~18세기 초에 이르러서이다.[4]
두 사진 중 왼쪽(모바일은 위쪽) 사진은 장전되지 않은 상태로, 해머에 부싯돌을 물려놓지 않았고 화약접시도 열려있다. 부싯돌을 물려 놓아야 화약에 불씨를 일으킬 수 있다. 보통 부싯돌만 끼우면 제대로 고정되지 않고 비뚤어지거나 이리저리 움직였으므로, 돌에 가죽을 감싸서 물려두었다. 또한 발사하기 위해서는 오른쪽 사진과 같이 화약접시를 닫아야 한다.
특성상 화승이 필요 없으며 격발시 화약의 반응속도가 다소 향상되었다. 하지만 매치락보다는 낫다고 해도 플린트락 역시 우천시나 습기가 있는 환경에서는 불발탄이 발생할 확률이 높았다. 실제로 먼지가 많거나 습기찬 환경을 가진 조선, 청나라, 일본, 인도 등의 나라에서는 유럽으로부터 플린트락이 전래된 후에도 신뢰성 문제 때문에 매치락을 고집했던 사례가 있었을 정도. 이 문제는 퍼커션 캡의 등장 이후에나 해결된다.
그러나 서구 제국들은 습기로썬 최악의 환경인 정글에서도 무리없이 플린트락을 운용했으며[5][6] 마찬가지로 동남아 국가들 또한 플린트락을 서구의 상관들을 통해 적극적으로 수입했고, 비록 실패했지만[7] 복제 및 자체 생산 시도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서구 제국들도 열대습윤기후가 아닌 온난 습윤 기후에서는 뇌홍이 발명되기 전까진 전쟁에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실제사례로 제1차 아편전쟁때 삼원리 사건에서 영국군이 플린트락을 들고 갔다가 하필 비가 오는 바람에 냉병기를 든 농민들한테 박살날 뻔했고, 뇌홍[8]이 도입되면서 동아시아권의 개인화기 기술이 빠르게 발전했다.
좋은 부싯돌은 가격이 제법 나갔기 때문에 병사들 중에 이걸 빼서 팔아먹는 놈들도 있었다. 어차피 혼란한 전투 중에 누가 불발돼도 알 수 없는 일이었기에 저질러진 행위. 물론 들키면 징벌을 받았고, 당대 하사관들은 지금 못지 않게 총기 검열을 빡세게 했다.
한편 플린트락에도 세부적인 분류가 있는데, 19세기 영화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브라운 베스나 샤를르빌 등 일반적인 서유럽 머스킷의 작동 메커니즘은 파이어락(firelock)이라 불리는 것이다. 그 외에도 스냅핸스(snaphance)나 미퀼렛(Miquelet) 등 약간 다른 종류의 작동 방식이 존재했으나 일반적인 파이어락보다 복잡하고 고장이 잦았다.
스냅핸스의 격발장치 구조.# 미퀼렛과 스냅핸스 모두 척 봐도 일반 플린트락보다 뭐 하나씩 더 붙어 복잡해 보이는 구조다.
19세기 초~중엽까지도 사용되다가 뇌홍을 활용하는 퍼커션 캡의 등장 이후 군대에서 퇴출되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원시적인 작동 방식이라고 할 수 있으나, 플린트락은 발명된 후 거의 100년 이상 큰 변화 없이 절찬리에 사용되어 온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였다.
아프가니스탄의 소총인 제자일도 주로 플린트락 방식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제자일 자체가 영국군이 버린 망가진 소총 부품을 베이스로 이런저런 부품을 끼워넣으며 급조한 총들이라 딱히 정해진 제원이 없었고, 그러다보니 더 원시적인 매치락 방식 제자일도 존재했다.
3. 조선에선?[편집]
기록에 따르면 조선은 플린트락(머스킷 소총) 방식을 굉장히 부정적으로 보는데[9] 이는 불발 문제만이 원인은 아니었다. 매치락을 고집할만큼 플린트락의 불발률이 큰 문제가 되었다면 모든 유럽 군대가 전부 플린트락으로 갈아타는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다. 우리나라 이상으로 습한 영국은 그럼 어떻게 플린트락을 대규모로 운용했냐는 점 역시 큰 걸림돌이다. 열강들은 습도로는 더 이상 나쁠 수 없는 정글 지대에서도 큰 무리 없이 머스킷을 운용했으며 심지어 태국의 시암왕국이나 베트남의 응우옌 왕조등 동남아 제국들도 적극적으로 플린트락 머스킷을 수입해 전열보병의 주무장으로 운용했다.
그럼에도 조선은 왜 플린트락을 도입하지 않았는가? 첫 번째 추측으로는 동아시아엔 플린트 같은 질 좋은 부싯돌이 없었다는 것이 있다. 한국에 널린 차돌로는 불꽃이 잘 일지 않으며, 황철석이나 마노 정도가 대등한 성능을 내는데 이것들은 조선 땅에선 준 보석급이라 구하기가 어렵다.
두 번째는 당시 조선의 교리가 지금의 예비군 뻘인 속오군조차 연간 교탄 소모량이 자동소총을 쏘는 현대의 한국 예비군과 비교해도 상당히 많았을 정도로 사수들의 명중률에 굉장히 민감했던 탓이 있다. 매치락 머스킷의 격발 방식은 앞서 말한 용두가 후퇴 고정되는 것이 기본이냐, 격발 위치로 전진된 것이 기본이냐에 따라 지발식과 순발식으로 나눈다. 전자는 용두가 스프링 힘으로 후퇴 고정되는 것이 기본이고 방아쇠를 당길 때 손가락 힘으로 용두를 전진시키는데 유럽과 중국에서 애용되었다. 후자는 용두가 전진된 것이 기본이고 장전시 용두를 후퇴시켜 걸쇠에 고정한 후 방아쇠를 당기는 동작으로 걸쇠만 치워 용두가 스프링 힘으로 전진할 수 있게 하는데 조선과 일본에서 애용되었다. 이는 현대 권총의 더블액션/싱글액션 방식의 차이와 유사한데, 방아쇠압과 격발 준비 과정의 차이로 인한 장단점도 서로 유사하다. 이 때 플린트락 머스킷의 작동 구조는 유럽의 지발식에서 출발했으므로 방아쇠압 또한 이와 유사할 정도로 비교적 무겁다.
세번째로 조선의 기술 및 공업력이 유럽보다 뒤떨어졌던 것도 양산에 걸림돌이 되었다. 조총에도 용두를 화약접시에 꼽는 스프링이 들어가니 플린트락도 못 만들 거 없다는 견해도 있지만 조총에 들어가는 스프링은 황동 스프링으로써 불씨가 살아있는 화승을 갖다대기만 하면 되니 복원력만 있으면 되었지만 플린트락에 들어가는 스프링은 부싯돌이 장착된 공이치기가 방아쇠를 당기면 화약접시 덮개를 개방함과 동시에 불까지 붙여야 하는 이중기능을 할 수 있는 강한 동력을 제공해야 했으므로 강한 탄성력이 요구되었고 따라서 시계태엽과 유사한 재질의 스프링강을 써야했다. 당시 조선은 무게추를 이용한 자명종은 어찌어찌 만들어냈지만 태엽이 필요한 회중시계는 끝끝내 못 만든 것을 생각하면 기본자재 생산부터가 난관이었으며, 동아시아의 스프링 생산 문제는 비단 조선만이 아니라 일본, 청나라도 마찬가지라 스프링을 고래수염으로 대체해야했다.
이는 1860년대 조선의 과학력이 기록된 의기집설에 태엽을 만들줄 모른다고 적혀있는 것으로 알 수 있는데, 개항으로부터 거의 30여년 전의 시기임에도 이정도 재료공학을 가지고 있었다면 이보다 과거에 이런 기구를 대량양산할 기술이 있기 힘들다. 더욱이 플린트락은 고장력 스프링만 필요한게 아니라 공이치기가 함부로 움직여 사고나는 걸 방지하기 위한 안전장치 등 여러가지 장치들이 들어갔기 때문에 상당한 수준의 기술력을 요구했다. 서구의 문물을 일찍히 접한 동남아에선 플린트락의 성능을 인정하고 대량으로 사용했지만 기술력 부족으로 국산화에 실패하고 유럽 상인에게서 대량으로 구입해 사용한 것만 보아도 플린트락의 생산이 당시 수준에선 결코 쉽지가 않았단 걸 알 수 있다.
4. 사용 방식
사격 방법은 대체로 화승총과 유사하나, 화승을 다룰 필요가 없어져서 보다 단순화되었다.[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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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총에서 해머(공이치기)라고 부르는 부분을 콕(cock)이라고 칭하는데, 여기에 부싯돌이 단단히 물려있다. 콕을 뒤로 당겨서 장전하는 것을 풀콕이라고 하며 현대 화기의 해머 코킹도 이 용어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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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킹 후 방아쇠를 당기면 콕이 앞의 프리즌(frizzen)을 때리는데, 프리즌은 화약접시의 뚜껑 겸 부싯돌과 부딪혀 불똥을 일으키는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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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즌이 얻어맞은 충격으로 튕겨서 열리면서 - 거기서 생긴 불똥이 화약접시 상의 점화 화약에 불이 붙고 - 그 폭발이 화약접시 옆의 약실로 향하는 작은 구멍으로 전달되어 약실을 점화한다.
나폴레옹 전쟁을 전후하여 영국군 일부 연대를 주축으로 보급된 탭 로딩은 분당 3발, 최대 4발 사격을 가능케 하여 발사속도를 획기적으로 빠르게 할 수 있었다. 이 방식은 힘들게 꼬질대로 꾹꾹 쑤셔넣는 것이 아니라 총 자체를 바닥에 툭툭 쳐서 중력에 의해 화약과 총알이 가지런히 정렬되도록 하는 방식.
다만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당시 서양에서 흑색화약은 가루상태가 아니라 '코닝'이라는 공정을 거쳐 알갱이 형태로 유통됐기 때문이며 이 방식에서 쓰는 머스킷탄은 딱 맞는 탄이 아니라 약간 헐렁하다(딱 맞는 탄을 쓰면 정확도는 오르지만 최악의 경우 망치로 꼬질대를 때려가면서 장전해야 한다). 아래 동영상(2:35)을 보면 샤프 소령과 리인액터들이 친절하게 가르쳐준다. bite, pour, spit, tap, aim의 5단계가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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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te: 탄환과 화약이 함께 든 종이 봉투를 입으로 뜯는다. 이 때 탄환이 입속으로 들어간다.[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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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ur: 종이 봉투 안의 화약을 약접과 총구에 주입한다. 약접에 화약을 넣고 닫는 것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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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it: 입속의 탄환을 총구에 뱉어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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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p: 총구를 위로 향하게 하여 개머리판을 땅에 두어 번 두들긴다. 이 절차가 꼬질대로 쑤시는 절차를 갈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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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m: 조준한다.
다만 해당 동영상의 댓글을 보면 이 과정에서 spit은 불필요하며 안전상의 문제를 일으키므로[14]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 다음의 영상에서는 해당 과정을 생략하고 사격한다.
아예 통째로 탄포를 집어넣는 방법도 있는데, 사실 위의 5단계 방식보다 우수한 방법이다.[15] 몸에 좋을 리가 없는 납탄이 입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 이외에도 탄이 종이 탄포와 함께 총구로 들어가기 때문에 총신에 더 밀착하게 된다. 원래 탄환의 구경이 총신의 구경보다 작으므로 헐거워서 명중률 저하의 원인이 되지만 이 경우 탄포가 그 빈틈을 메워 명중률을 높여주는 것이다. 보통 이렇게 하면 탭 로딩이 불가능할 정도로 뻑뻑해져서 꼬질대로 쑤셔줘야 하지만 마침 탄포는 기름종이라서 쉽게 미끄러져 들어가므로[16] 탭 로딩도 여전히 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스핏 동작을 위해 총구를 입가로 가져다 대는 잔동작도 하나 생략함으로써 장전 시간을 소소하게 단축할 수 있다. 즉, 연사속도와 명중률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셈이다. 동영상의 사수는 그리 빠르지 않은 동작으로도 대략 14초에 한 발을 쏘는데 1분당 4발이라는 놀라운 연사속도로 35야드(32m) 거리의 작은 표적을 모두 맞혔다.
다만 당대 플린트락 머스킷을 쓰던 군인들이 바보라서 탭 로딩을 애용하지 않았다고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최초로 쏠 때야 총열에 탄매가 끼지 않아 탭 로딩을 쓰더라도 큰 문제가 없었지만, 전투 중에 탭 로딩을 하면 탄이 총열 중간에 걸려 약실까지 제대로 들어가지 않아 온전히 화약 폭발의 힘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생겼기 때문이다.[17] 이러면 탄의 속도가 떨어져 사거리는 물론 살상력도 급감한다. 이러한 이유로 당시 군대에서는 이러한 탭 로딩을 꼼수로 봐서 금지하는 경우가 많았다.
5. 현황[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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