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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스킷

USS DELTA VECTOR 2022. 11. 1. 17:52

분류총기 지상 병기/고대~근세기

 

1. 개요

머스킷(Musket)은 아르케부스에서 개량되어 16세기~19세기에 널리 쓰였던 총기이다. 긴 총신을 가진 전장식 화기이며, 총신은 후대의 라이플과 달리 강선이 없었다. 개머리판, 방아쇠, 총신 등 현대 총기의 기본적인 형태를 갖추고 있는 흑색 화약 무기였으며, 머스킷이 구분되는 기준은 시대에 따라 다르지만 총기 개발 초기인 15~16세기에는 개머리판을 갖췄으며 아르케부스와 비교했을 때 구경이 보다 크고, 총열도 4피트(대략 122cm) 이상인 총기를 머스킷으로 불렀다.

매치락이나 플린트락으로 대표되는 격발 방식과 머스킷의 정의는 전혀 관계가 없으며, 위의 조건에 부합한다면 매치락도 얼마든지 머스킷으로 분류된다. 다만 아르케부스는 플린트락 방식이 개발되기 이전에 쓰였다가 도태된 총기이기 때문에 아르케부스는 매치락의 하위 분류이라고 보면 대체로 정확하다.
 

2. 다른 총기와 차이점

아르케부스와 머스킷을 구분하는 특징 중 하나는 긴 총신이지만, 아르케부스 또한 시간이 지나 대구경화되며 총열도 길어지는 양상을 보이게 되기 때문에 이 특징 하나만으로는 양자간 명확한 구분은 힘들어진다. 예컨대 조선 또한 천보총과 같은 대구경 아르케부스를 썼기 때문에 이렇게 되면 아르케부스와 머스킷의 차이는 개머리판의 유무 정도만 남게 되는 셈이다.

머스킷은 현대의 소총에 비해 구경이 크고 길이도 길며, 매우 무겁다. 3kg 정도의 각국 현대 제식 소총도 충분히 무겁게 느껴지는 것과 비교해 그나마 경량화가 되었다는 프랑스 제1제국 시대 브라운 베스 머스킷이 5kg가 조금 덜 되는 정도였다. 이는 전장식 활강 화기의 특성상 총열도 길게 만들고 탄환도 커야하며 화약도 많은 양을 넣어야 위협적인 화력이 나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3. 활과의 비교[편집]

머스킷은 라이플과 달리 강선도 없고 뇌관도 없었다. 연사는 힘들고 정밀성은 매우 떨어졌으며 야전에서의 보관도 힘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활의 성능을 압도했다. #

 

3.1. 사수 양성[편집]

군대 무기에서 조총(鳥銃)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어린아이도 항우(項羽)를 대적할 수 있게 하는 것으로 참으로 천하에 편리한 무기다.

숙종 조에 영의정을 지낸 남인(탁남)의 영수 허적.[1]

머스킷 사수 양성은 궁사 양성보다 매우 빨랐다. 총은 총성과 반동에 대한 두려움만 극복하면 금방 배우며, 다루기도 꽤 편리한 병기이다. 물론 머스킷이 현대의 소총보다 더 번거로운 총기인 것은 맞지만, 기본적으로 활보다 훨씬 배우기 쉽고 다루기 쉽다는 면에서는 마찬가지였다. 머스킷의 장전 및 사격술은 일주일 정도면 충분히 익힐 수 있다.

하지만 활의 경우, 익히는 데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당장 국궁만 하더라도, 시위를 당길 수 있게끔 근력을 기르는 데 최소 한 달은 트레이닝을 해야 한다. 빈 시위를 당기는 방법으로 한 달 동안의 지루한 수련을 보내면, 이제 원하는 방향으로 살을 쏴 보내는 정도로 숙달하는 데 최소 몇 달은 훈련을 받아야 한다. 표적을 맞히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방향으로 화살을 쏘는 데에만 몇 개월이 걸린다는 얘기다. 이 과정에서, 활 시위에 팔이 쓸리는 등의 부상을 입는 경우가 부지기수이다.

그나마 습사용 국궁의 경우, 장력이 수십 파운드라서 그나마 배우기 쉬운 편이다. 장력이 백 파운드가 넘는 전투용 활들, 예컨대 장궁 등은 이것보다 더 오래 걸렸다. 일반적으로 장궁수는 몇 년 정도의 수련시간을 필요로 했으며, 베테랑이 되기 위해서는 10년 이상의 수련을 필요로 했다. 활 시위를 당기는 것은 상당한 근력을 필요로 했으며, 안정적으로 조준하게끔 시위를 당기고 겨누는 것도 오랫동안 궁술을 연마해야지 할 수 있었다. 괜히 에드워드 1세 일요일마다 백성들에게 장궁을 연습하라고 닦달한 것이 아니다. 그만큼 생활과 밀착시켜서 진득하게 오랜 시간 동안 연습해야 전쟁에서 쓸 만한 수준이 되는 것이 활이었다.

튜더 왕조 시대 영국의 군인이자 작가인 Barnabe Rich(1540~1617)는 천 명의 궁수를 소집할 경우 200보 이상 화살을 날릴 수 있는 궁수는 백 명이고, 이백 명은 180보 미만으로 화살을 날릴 수 있고, 그 외 나머지 궁수들은 그보다도 미달이라고 추산했다.[2] 즉 전쟁에서 쓸 만한 궁수가 천 명 중 삼백 명도 안 된다는 말이다. 정부가 직접 나서서 궁수를 집중적으로 양성한 영국이 이 정도 수준이다. 그 정도로 궁수의 양성은 힘들었다.

영국 외의 다른 중세 유럽 국가들이 석궁을 채용한 것은 활이 숙련되는 데 상당한 시간을 요하고, 숙련자는 희소성이 높다는 이유가 있었다. 중국이나 한국도, 기원전부터 활과 쇠뇌를 병용하여 징집병에게는 쇠뇌를, 전문적인 궁수에게는 활을 쥐어주는 식으로 운용하였다.

16세기에 이르러서 머스킷 등의 총기가 발전하면서, 활의 약점은 더 도드라졌다. 1595년 영국 추밀원은 장궁을 영국군의 공식 무기 목록에서 제외시킨다. 영국인들은 그들이 잘 쓰던 장궁을 버리고 화승총으로 갈아탄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조선 또한 숙련된 궁수가 부족하다는 문제점으로 골치를 앓고 있었다. 조선군도 임진왜란 이후 조총을 주력으로 채택하였다.

3.2. 사거리[편집]

일반적으로 화살은 곡사로 날아가고, 총탄은 직사로 날아간다. 물론 총탄도 장거리 사격에서는 곡사로 조준해야 표적을 맞힐 수 있지만, 이 경우는 활과의 비교이니 논외로 하기로 한다.

최대 사거리만 놓고 보면 머스킷이 화살보다 우월해보인다. 일반적으로 머스킷의 총탄은 1km 정도 나간다. 또한 100m에서의 탄속은 음속과 비슷한 수준이다. 참고 자료 화살의 최대 비거리가 터키 복합궁을 기준으로 500m 초반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는 더 길다.

하지만, 머스킷이 100m 밖의 목표에서는 상당히 큰 공산오차를 보이기에 이는 실질적으로 큰 의미는 없다. 당장 롱 랜드 패턴 브라운 베스의 공산오차가 30MOA이고, m1777 샤를르빌 머스킷의 공산오차는 36MOA이다. 즉, 100야드에서 브라운 베스는 지름 76.2cm 의 탄착군을, 샤를르빌은 지름 91.44cm의 탄착군을 형성한다는 말이다. 이 정도 되면 100미터에서 사람 상체를 맞힐 가능성은 사실상 두 발에 한 발이라고 봐야한다. 실제 실험에서도, 100m에서 머스킷은 사람 크기의 표적에 대해 50%내외의 명중률을 보여 주었다. 참고 자료

화살의 곡사 탄도는 활강식 머스킷의 탄도에 비해서 안정적이다. 화살에 달린 화살 깃이 날개 역할을 하고, 화살의 형태는 공기 저항을 덜 받기 때문이다. 즉 총보다는 더 긴 거리에서 안정적인 탄도를 보여준다. 여기에 착안하여 많은 사람들이 활이 총보다 사거리가 더 길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활의 실질적인 유효 사거리가 총보다 더 우월하냐고 물어보면 그것도 확답은 어렵다. 화살이 총알보다 탄도가 안정적이라고 해서 활이 총보다 유효사거리가 길고, 명중률이 높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후술하겠지만 활의 사람에 대한 명중은 여러 가지 문제로 인해 소수의 숙련된 궁수를 제외하면 총보다 더 어렵다. 그렇기에 옛날의 궁수들은 적군 개인에 대한 조준사격을 하는 것이 아닌, 일제사격으로 적의 밀집대형을 타격하는 전술을 썼다. 이는 18세기 당시의 머스킷도 마찬가지이다.

일제 사격시 활의 유효사거리는 활마다, 자료마다 다르기에 일반화시키기가 매우 어렵다. 영국 장궁을 예로 들자면, 역사학자들은 일제 사격시 장궁의 유효사거리를 200야드(약 180m)로 추산하고 있다. 머스킷의 일제사격이 일반적으로 100m 내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을 생각하면, 언뜻 보면 머스킷보다 사정거리가 길어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사거리를 이론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곤란하다. 장궁에게 유효사거리 200야드는 일제사격 시 타격을 줄 수 있는 최대치의 사거리이다. 반면, 머스킷의 유효사거리 100m는 개별 사격 시 사람을 맞힐 수 있는 최대치의 거리이다. 200야드는 머스킷 일제사격으로 충분히 피해를 줄 수 있는 거리다.[3] 다만 그 정도 거리에서는 결정적인 타격을 줄 수 없고, 사상자 수 대비 탄약 소모만 늘어나는 비효율적인 사격이기에 지양했을 뿐이다.

밑의 명중률에서 서술하겠지만, 장궁이 사람을 맞힐 수 있는 거리는 80야드로 추산된다.(사실 이 정도 거리도 맞히려면 몇 년 이상 수련을 해야 한다) 즉, 장궁의 유효사거리 개념이 상대적으로 머스킷에 비해 매우 관대한 것이다. 활이 머스킷보다 유효사거리가 길다는 오해는 처음부터 서로 다른 사거리 개념을 가지고 비교한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

바람, 적군이 입은 갑옷 및 착용한 방패 등 여러 변수를 고려하면 실질적인 활의 유효 사거리는 200야드보다도 짧을 수 있다. 특히 장궁의 관통력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장궁의 관통력은 판금갑옷에 매우 취약하다.

장궁이 쓰였던 시대보다 후대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정조시대 조선 수군의 규범인 수조규식에서 조총은 100보(120m)에서 쏘도록 하고, 활은 90보(108m)에서 쏘라고 한 내용이 이를 뒷받침한다. 조선인들도 활의 사거리를 머스킷보다 길다고 보지 않은 것이다. 즉, 유효사거리 면에서 봤을 때 활이 머스킷보다 사거리가 길다고 단언하기가 어렵다.

다음 명중률 편에서 후술하겠지만, 유효 사거리 내의 명중률 또한 활의 우월함을 장담하기가 어렵다.

3.3. 명중률[편집]

머스킷의 약 우세. 병사가 제대로 숙련되었을 경우엔 활이 더 우수한 명중률을 보였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머스킷이 활보다 맞히기 쉬웠다.

총기류가 등장하기 전까지 인류의 가장 보편적이었던 원거리 무기인 활과 비교하자면 에 비해 명중률이 떨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명중률 문제는 활 또한 고도로 숙련된 명궁이 아닌 한 심각하게 떨어지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활은 화살의 탄도가 곡선이기에 탄도를 감으로 예측해서 조준을 해야 하는 점이 매우 어렵고, 활시위를 당기면서 조준하는 것 또한 엄청난 근력을 요하기에 매우 힘들다. 또한 화살의 탄속 자체가 느려서(50~60m/s 정도) 바람이 불거나 표적이 이동하면 명중률은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숙련자가 아닌 이상, 활의 명중률은 낮은 편이었다. 이해가 안 간다면 앞에서 서술한 사수 양성 부분을 다시 보도록 하자. 오랜 기간 동안 수련해서 일반적인 머스킷 이상으로 쏘는 궁수는 어디까지나 소수인데, 이것을 과연 활이 머스킷보다 잘 맞는다고 할 수 있을까?

실제 히스토리 채널이 방송한 실험영상에서, 60야드(약 54미터) 떨어진 갑옷을 입은 마네킹 표적을 장궁수는 계속 빗맞히고, 석궁은 맞췄지만 튕겨 나가고, 머스킷만이 유일하게 표적을 맞히고 갑옷을 관통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오히려 반동만 익숙해지고 견착과 조준만 잘하면 초보자도 일정 사거리 정도의 명중률을 장담할 수 있는 머스킷이 활보다 평균 명중률 면에서는 더 나을 수도 있었다.

머스킷은 활보다 조준하고 맞히기가 편하다. 총알의 탄도가 수평이기에 곡선으로 날아가는 화살보다 조준이 쉽고, 화약이 폭발하는 힘으로 탄을 날리기에 시위를 당기면서 조준까지 해야하는 활보다 더 안정적인 상태에서 조준을 유지할 수 있다. 또한 가늠쇠와 가늠자가 있는 머스킷은 말할 것도 없고, 없는 머스킷(18세기 유럽에서 제조된 대부분의 머스킷은 가늠자가 없었다)조차도 총열의 양끝을 일치시키는 조준선 정렬을 통해 표적에 대해 어느 정도 정확한 조준이 가능하다. 하지만 활은 탄도를 가늠할 수 있는 조준기나 기준점으로 삼을 수 있는 요소 자체가 없어, 겨누는 것 자체가 사수가 감으로 각도를 설정하는 수준이었다. 그렇기에 활은 '정확한 조준'이 힘들었다. 게다가 화살의 탄속이 50~60m/s 수준에 불과하고 비거리가 길 수록 속도가 느려지는 점을 감안하면, 움직이는 사람은 맞히기 힘들었고 심지어 날라오는 것을 보고서 방패로 막거나 피하는 경우도 많았다.

활은 상기한 문제로 인해 저격용 무기로 부적합한 무기이다. 백년 전쟁 당시 영국군은 장궁수를 밀집시킨 다음 45도 곡사로 일제사격하여 특정 지점의 기사와 보병들을 광역 제압하는 방식으로 운용했다. 물론 잭 처칠이나 이성계 같은 예외 또한 있다. 유튜브를 찾아보면 100m 내외에서 표적을 활로 맞히는 유튜버들 또한 있다.[4] 하지만 이런 명궁들은 역사에 이름을 남길 정도로 소수이며, 활을 접한지 얼마 안 되는 사람들에게는 수십 미터 거리의 표적도 맞히기 어려운 표적이다. 실제로 조선은 임진왜란 전부터 숙련된 궁수의 부족으로 인한 육군 전투력의 공백으로 고민하고 있었으며, 임진왜란 이후 각궁에서 조총으로 주력무기를 변경한 이유도 숙련된 궁수는 얼마 없고, 미성숙한 궁수는 명중률이 조악해서 일인분도 못 하는 경우가 허다한 반면에 조총수는 어느 정도만 숙달이 되어도 꽤 괜찮은 명중률을 보여줄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다.

머스킷 또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일단 탄의 형상이 공기역학적이지 못해서 일정 사거리를 넘어가게 되면 탄도가 제멋대로였고, 강선 등의 탄도 안정기술도 없었기에 명중률이 현대 기준에서 보면 지독하게 나쁜 것은 사실이다. 사람 크기의 표적을 기준으로 하면, 머스킷이 확실한 명중을 기대할 수 있는 거리는 50m의 거리였다. 사람 크기의 표적을 맞힐 수 있는 거리는 100야드(91미터) 정도였지만, 탄착 오차가 커서 100% 맞힐 수 있다고 장담하긴 어려웠다. 롱랜드 패턴 브라운 베스를 기준으로, 명중률은 30MOA정도였다. M4 카빈이 4MOA라는 점을 고려하면 '현대 기준'으로 봤을 때 총으로 쳐줄 수도 없는 수준으로 나쁘다. 오스트리아에서 한 실험에 의하면, 16세기~18세기의 머스킷들은 100m 떨어진 사람크기 표적에 대해 평균 50퍼센트 내외의 명중률을 보여줬다. 즉, 머스킷을 어느 정도 쏠 줄 아는 병사들은 짧게는 50m에서 길게는 100m 정도의 거리에서 명중률을 기대할 수 있었다. 활로 이 정도 수준의 명중률을 기대하려면 적어도 몇 년 이상 수련해야 한다.

심지어 저격병이나 명사수의 경우 활강 머스킷으로 150m까지도 커버하는 경우도 있었다.[5] 머스킷은 장전속도를 빠르게 하기 위해 일부러 헐렁한 탄을 사용하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느긋하게 쏠 수 있는 민간인 사냥꾼들은 가죽이나 천으로 된 와드로 꽉 들어맞는 탄을 장전했고 100야드 너머의 사냥감도 곧잘 노렸다.16세기 사격 클럽의 기록에 따르면, 133명의 사수가 약 180m 거리에 있는 1m 크기의 표적에 24발을 쐈는데 40명 이상의 사수가 20발 이상[6]을 표적에 맞혔다고 기록되어 있다.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활강 총신 머스킷으로 세운 기록으로, 총의 성능을 고려하면 이는 정말 대단한 업적이다. 더 놀라운 것은, 당시 강선총은 너무 잘 맞는다는 이유로 사격 대회 사용이 금지되었다고 한다.[7] 활강식 머스킷이 최대 퍼포먼스를 보여준 사례는 잉글랜드 내전 당시에 왕당파 소속의 병사 존 도잇이 의회파 군 지휘관 브룩 경을 300야드(270미터)에서 저격한 사례이다.[8]

전근대시대 궁수가 사람 크기의 표적을 맞힐 수 있는 사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보여주는 자료는 거의 없다. 왜냐하면 활은 사람의 실력을 많이 타기 때문에, 결과값이 너무 들쭉날쭉해서 신뢰성 있는 자료를 만들기가 어렵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된다. 군 역사전문가 Kennedy Hickman에 따르면 백년전쟁 당시 영국 장궁의 경우 75~80야드(67~72m) 이상의 표적에는 명중률을 장담하기 힘들다고 한다.[9] 추측하건대 조준기가 없는 전근대 활의 특성상 일반적으로 활 잘 쏘는 명궁이 사람에 대해 실질적인 명중률을 보이는 사거리는 일반적으로 100m 내외였고, 200m 밖의 사람을 맞히는 것은 매우 힘들었을 것이라 추정된다.[10][11] 애초에 그 당시에 사격 통제 컴퓨터가 있는 것도 아니고 사람의 감으로 각도와 장력을 어림잡고 쏘는 이상 100m 너머의 사람에 대해 정확하게 쏘기는 매우 힘들다고 생각되는 바이다.

이렇게 놓고 보면 활이 머스킷에 비해 잘 맞는 무기라고 하기는 힘들다. 몇몇 엄청난 명궁의 희귀한 케이스를 일반화시키기 어렵다. 머스킷이 가지고 있는 상대적으로 저조한 명중률이 과장된 형태로 널리 퍼져있고 반대로 활의 다루기 힘든 점이 잘 안 알려져 있기에 머스킷이 활보다 명중률이 떨어진다는 오해가 인터넷을 중심으로 많이 퍼져 있다. 사실 활의 명중률 또한 고도의 난이도 및 곡사 탄도 때문에 실질적, 그리고 평균적인 퍼포먼스는 총보다 대단하지 않다. 다만 화살의 곡사 탄도가 머스킷 총탄의 직사탄도보다 안정적이기에 그러한 장점을 극대화한 소수의 명궁들이 존재했을 뿐이다. 그러한 소수의 명궁들은 10년 이상 연습한 베테랑들이었고, 앞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10년 이상 총을 다룬 사냥꾼들도 명중률 면에서는 부족하지 않은 모습을 보여준다.

이론이 아니라 현실적인 면에서 보면, 머스킷이 활보다 명중률은 떨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사수 능력치의 표준 편차를 고려하면 머스킷이 활보다 우수한 명중률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다. 그렇기에 많은 군대들은 활이던 머스킷이던 정확한 개인 사격보다는 일제사격으로 최대한 많은 양의 투사체를 퍼부어 제압력을 갖도록 하는 것이 보편적 방법이였다.

베트남전에서 미군이 1인 사살에 5만 발 소모했다는 점을 봤을 때, 명사수를 제외하고 활이나 총이나 명중률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12] 그냥 전투 시에는 무서워서 총이든 활이든 무조건 쏴갈기고 보니까

사실 머스킷 혹은 아르케부스 같은 초기 화기들이 전장에서 보여준 낮은 명중률은 구형탄환을 쏘는 활강총신 총기의 한계나 종종 가늠자조차 없는 엉성한 조준장치 등 총기 자체의 기술적 한계의 탓도 어느 정도 있겠지만, 그보다도 가장 중요했던 원인은 총기 자체보다 그 총기를 운용하던 병사들, 그리고 그 병사들을 모집하고 훈련하는 시스템의 문제였다고 할 수 있다. 이를테면 이 글에서 잘 나타나듯[13] 많은 전투에서 병사들은 애초 조준이라는 것 자체를 하지 않고 사격을 했다. 이는 개별 병사들의 낮은 숙련도 뿐 아니라, 애초 병사들의 훈련에서 사격술이 크게 중시되지도 않았던 결과였다.[14] 이런 경향은 기본적으로 전열보병의 시대까지 이어지다가 미니에 탄의 등장을 비롯 강선총기의 사용이 일반화된 남북전쟁 이후에야 바뀌기 시작한다.[15]

3.4. 관통력 및 살상력[편집]

머스킷이 압도적으로 우월하다. 활은 적이 무구를 갖추거나 하다 못해 두꺼운 천/가죽으로 덧댄 옷, 나무 방패 하나만 사용해도 살상력이 크게 떨어지고, 잘 만든 판금 중갑에는 이상적인 환경에서 강력한 장궁으로 직격시켜도 유효한 피해를 주기 어려웠던 반면에, 머스킷은 기존의 활과 화살은 물론 갑옷을 뚫기 위해 당시 한계까지 개량되었음에도 결국 플레이트 아머의 벽에 가로막힌 도르래식 쇠뇌조차도 훨씬 넘어서는 무시무시한 관통력과 살상력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머스킷 탄환의 운동 에너지는 1,500J이 넘었고, 대구경 머스킷은 2,000J이 넘어가기도 했다. 현대 M16 자동소총의 5.56mm 탄환의 운동에너지가 약 1,600J 수준임을 생각하면, 다른 고려사항을 제한 운동에너지만큼은 현대 소총탄에도 뒤지지 않았다. 장궁에서 쏜 화살의 운동에너지가 100J~150J 정도였다는 것을 고려하면, 그야말로 압도적인 힘이다.폭탄화살을 쓰자

15세기 들어서, 일반 활은 말할 것도 없고, 쇠뇌나 장궁 등의 강력한 궁시류들조차 발달하는 갑옷에 대해 매우 큰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장궁마저도 판금갑옷에게는 무력한 모습을 보였으며[16] 비슷한 시기의 조선 갑옷 두정갑은 각궁을 막았다.

애초에 궁시류 자체가 갑옷을 입은 군대를 저지하기 힘든 병기였다. 리넨 갑옷이나 가죽 갑옷 같은 소프트 아머조차도 화살의 관통을 상당 부분 저지했기에, 만약 뚫리더라도 착용자는 부상만 입을 뿐 바로 행동 불능의 중상을 입히거나 즉사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그렇기에 많은 군대들은 정확한 개인 사격보다는 일제사격으로 최대한 많은 양의 화살을 퍼부어 화살에 제압력을 갖도록 하는 것이 보편적 방법이었다.

총기의 발달을 주도하던 서양은 그 갑옷의 발달이 절정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기에, 확실하게 뚫어서 죽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도 하였으며, 동양 또한 그 압도적인 살상능력에 매료되어 화승총을 병장기의 주축으로 삼은 것이다.
 

3.5. 연사력

활이 더 낫지만, 궁수의 피로와 보유 화살을 고려해보면 총에게 역전의 여지가 있다
장전 속도의 경우에도 보통 1분에 2발씩 쏘던 일반 병사 대부분이 화약 대신 모래로 장전하고 부싯돌 대신 나무조각이나 끼우며 연습할 때 실탄으로 훈련을 하던 영국의 레드 코트처럼[18] 숙련된 사수는 분당 3발 정도를 쏠 수 있었다.[19] 그런데 조선 후기 평안도와 함경도 포수들 중에서는 조준이 아닌 방포의 경우에 한해서 분당 4발에서 최대 5발까지 방포할 수도 있었다고 한다. 3보1킬이 빈말이 아니었던 것이지만 그래도 활보다는 연사력이 느리다.[20]

하지만 전투용 활의 장력이 100파운드를 넘는 것을 생각해보자. 아무리 머슬맨이어도 그 정도 장력의 시위를 10번 이상 당기다보면 지치고 팔이 아파서 느려지거나, 심지어 더는 당기지 못하는 수도 있다. 하지만 전장식 총을 장전하는 것은 큰 근력이 요구되는 일이 아니기에 꾸준히 장전하고 쏘는 것을 반복할 수 있다.

게다가 보통 궁수의 화살 보유량은 20~40발이다. 프리드리히 2세의 보병들이 머스킷 탄약을 60발 정도 휴대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지속적으로 투사할 수 있는 발수는 머스킷이 더 많다고 할 수 있다. 현대의 소구경 고속탄인 5.56mm가 구식 대구경 탄인 7.62mm에 비해 독보적으로 우위에 있는 점이 바로 작은 크기에서 나오는 많은 휴행탄수임을 고려해보자. 고작 몇 밀리미터 치수가 다른 탄환도 이렇게 차이가 나는데 거의 사람 다리만한 길이의 화살과 한 손에 대여섯 개는 쥘 수 있는 쇠구슬 중 어느 쪽을 더 쉽게, 더 많이 지니고 다닐 수 있는 지는 계산이 없이도 알 수 있을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YJYn1sqwQmM
드물지만, 꼬질대를 사용하지 않고 사격하는 경우도 있었다. 영상은 리인액터들의 공연.

3.6. 유지보수[편집]

머스킷의 약 우세. 물에 젖은 머스킷은 마를 때까지 격발할 수 없지만, 물에 젖은 활은 완전히 망가져 버린다.

활은 단순하게 생겨먹은 것과 달리 관리하기가 정말 까다로운 무기였다. 습기에 노출되면 탄성을 잃어 심각하게 성능이 저하되었다. 아교를 사용한 합성궁은 말할 것도 없고, 단순궁이라도 비에 젖으면 시위의 탄력이 떨어졌다. 그렇기에 습기가 많은 기후인 일본의 경우 장궁 형태의 단순궁을 썼으며, 아예 인도는 탄성이 높은 철로 활을 만들었다. 시위를 거는 것이 전보다 수월해졌다면 그 활은 망가진 것이니 버려야 한다는 이야기 또한 있다.

총 또한 화승이나 점화약이 비에 젖으면 쏘지 못한다는 약점이 있다. 하지만 물에 젖으면 못쏘는 총의 약점이 물에 젖으면 아예 망가지는 활의 약점보다는 더 나은 것이 사실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여러 차례에 걸쳐 보완이 이루어졌다. 조선같은 경우는 우의나 작은 가리개 같은 것으로 어느 정도 방수력을 확보하는 방법을 고안했다. 실제로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이인좌의 난 때 반란군의 조총은 비에 젖어서 사격을 못했지만, 관군은 어느 정도 방수대책을 했기에 비에 구애받지 않고 사격했다는 기사가 있다. 이 문제는 플린트락이 개발된 이후에도 근본적으로 개선되지 않았고, 19세기 들어서서 퍼커션 캡이 개발되어야 개선, 후에 금속 탄피로 넘어가면서 완벽하게 극복해 아예 물 속에서도 잘만 격발할 수 있게 된다.[21]

총 같은 경우에는 사격 후 총기손질을 제때 안 해주면 총신이 부식된다는 문제가 있지만, 관리 안해서 좋을 병기가 없으니 이거야 뭐 제때 잘 해주면 되는 문제이다. 또한 이 부식 등의 문제는 무연화약을 쓰는  총기들도 모두 해당되는, 현대 기술로 해결이 사실상 불가능한 문제다. 오히려 활강식 머스킷 같은 경우에는 강선이 없기에 수입이 간편하고 총신 훼손이 덜 된다는 장점이 있었다.

3.7. 가격[편집]

머스킷이 좀 비싸지만, 활의 원자재 비용 및 생산기간을 고려하면 쌤쌤이다.

사실 머스킷의 가장 치명적인 단점은 가격이였다. 총기 자체도 지금 기준으로는 저열하기 짝이 없는 쇠파이프에 나무쪼가리 붙인 것에 불과하지만 아직 공작기계도 없었던 시기에는 당시로서는 고난이도의 기술이 듬뿍 들어간 정밀한 작동 기계였다. 그 때문에 내로라하는 총기 장인들을 닦달하며 만들어봐야 머스킷의 생산성은 영 좋지 않았고, 당연히 머스킷의 가격은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나폴레옹의 프랑스군도 어떻게든 수준급의 머스킷을 확보하려고 죽어라고 개고생 했을 정도.

비싸기는 머스킷 본체만 비싼 게 아니라서 머스킷을 쏘려면 꼭 필요한 화약 같은 소모재도 엄청나게 비쌌다. 19세기만 하더라도 화약은 엄청난 고가품이었고, 재료 수급의 문제로 생산량 자체가 제한되어 경우에 따라선 돈 주고도 못 구하는 물품이었다.[22] 화약을 만드는 공정은 까다롭고 복잡한 과정이었으며 안정성 문제로 사고의 위험도 높았다. 또한 그 재료 중 하나인 초석은 구하기도 상당히 힘든 물건으로 신대륙의 구아노와 초석 광산을 개발하기 전까진 동양이나 서양이나 크게 다를 건 없었다.[23] 덤으로 플린트락 같은 수발식 총의 부싯돌 또한 30회 정도 사용하면 갈아줘야하는 소모품이었다. 이러다보니 화약이나 수석같은 물품들은 실전을 위해 비축해두는 게 당연했고 그 당시 사격 훈련이란게 달랑 장전연습과 화승총의 지향연습이 전부인 상황까지 나타나게 된다.[24] 즉, 이제 막 입대한 신병은 총을 '쏘는 법'은 알아도 '효율적으로 쏘는 법'을 몰랐기에 명중률이 낮게 보이는 것이다. 때문에 빈 총으로 대충 훈련해놓고 부사관들이 "실제로는 다르니까 실전에선 다르게 하라~"라는 말을 덧붙이는 일은 당연한 것이었다 [25] 때문에 전쟁이 격해지자 대충대충 훈련받고 투입된 전열보병 신병은 천둥같은 총성과 몸을 때리는 반동에 자기가 쏴놓고 자기가 겁먹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하지만 활 또한 저렴한 무기는 아니었다. 아무나 만들 수 없어 장인이 필요했던 건 마찬가지였고, 활의 재료 역시 대충 나뭇가지 주워다 꺾어다 만드는 게 아니라 잘 관리된 고급 재료여야 했다. 우리나라의 각궁의 경우 주 원자재인 물소뿔을 중국에서 수입하였기에 그 생산단가는 매우 비싼 편이었다. 당시의 여유있는 나라가 하나둘씩 활에서 총으로 주력무기를 변경한 데에는 이런 생산 문제도 있었다. 장궁과 그걸 다루는 기술이 나라의 자랑이었던 영국이 머스킷으로 주력무기를 변경한 이유 중 하나는 장궁의 원자재인 주목이 영국 내에서 씨가 말라 이를 아메리카나 북유럽에서 수입해야 했고, 이런 운송비 때문에 생산단가가 하늘을 모르고 올라가서였다.

또한 생산에 있어 딱히 오래 기다리는 과정이 없이 재료 모이면 가공 조립해서 내놓으면 되는 머스킷과 달리 활은 좋은 재료가 구비됐다고 뚝딱 만들어지는 무기가 아니라, 합성궁의 경우 아교같은 접착제가 잘 붙게 두어야 하기에 3년 동안 기다려야 했고, 심지어 장궁같은 단순궁들도 어느 정도 탄성과 내구성을 확보하려면 1~3년 정도 시간을 두고 기다려야 했다. 그렇기에 공산품 찍어내듯이 생산라인을 확장한다고 해서 바로바로 생산해낼 수 없었고, 이러한 시간 등을 고려하면 전쟁터에서 소비되는 양 대비 생산량은 한정적일 수밖에 없었다.

3.8. 사기 저하 및 제압 능력[편집]

상식적으로, 하늘을 빼곡히 메울 정도로 많은 화살이 쏟아지거나 총알과 포탄이 일제히 쏟아지는 상황에서 제정신을 유지한 채로 밀집 대형을 묵묵히 지키는 건 매우 어렵다. 게다가 머스킷은 한 발 한 발 쏠 때마다 천지가 울리는 듯 뻥 뻥 터지는 소음을 내는 화약 무기이기 때문에 동수의 활보다는 상대방에게 이런 전의 상실을 유도하기 조금 더 쉬웠으리라는 의견도 있다.

예를 들어 데이브 그로스먼의 “전투의 심리학”에서는 현대 소총의 제압 효과를 이야기하며, 전근대로 치면 화살과 머스킷총 사이의 제압 효과 격차가 현대 총기 중 권총과 소총 사이의 제압 효과 격차와 비슷할 거라고 비유했다.

물론 17세기, 18세기를 거치며 화약무기를 주력으로 사용하는 전장 환경에 맞는 훈련 및 심리적 적응 방식이 도입되기는 했지만, 일제사격과 함께 귀가 멀 듯한 천둥 같은 총성이 나고, 흑색화약이 시커먼 연막을 이뤄 적의 위치도 잘 모르겠는 와중에, 눈에 보이지도 않는 납구슬이 우수수 날아와 옆에 아군이 뭐에 맞은지도 모르게 피식 쓰러져가는 아비규환에 적응하기 위해선 학대 수준의 훈련이 필요했고, 그렇게 준비를 하는 것도 좋게 말해야 훈련이지 “전열에서 이탈해서 적에게 개별마킹당해 확실히 죽느니 운 좋게 빗나갈 수 있는 총알 비 앞에 선다.”는 선택을 강요하는 수준이었다. 총이 전 인류의 표준 무장이 되어 군인이라면 총이 어떤 소음을 내고 뭘 할 수 있는 지 다 아는 지금도, 실전을 겪으면 귀를 때리는 소리에 머리가 멍해지고 빗발치는 총알에 정신을 못 차리는 경우가 나오는데, (미숙련된) 사용자조차 제 총에 겁을 먹은 그 시절에야 오죽했겠는가. 사실 숙련자도 총기를 다룰때마다 긴장할 수밖에 없다. 총 터져서 손가락이 날아갈지 눈알이 날아갈지 아무도 모른다!

화살 비도 맞으면 죽는다는 공포를 줄 수 있고, 맞으면 죽거나 다칠 수 있는 건 같지만, 폭음과 냄새와 매연 같은 부가 효과는 머스킷만의 특징이었다. 활이나 쇠뇌에서도 활줄 튕기거나 기관부가 움직이는 소리는 나지만, 이런 건 공포스럽고 우렁차게 울리는 날카로운 총성에 비하면 아주 부드럽고 귀여운 수준이다. 여기에 어지간한 갑옷은 뚫어버리니 공포는 더더욱 증가. 신대륙 침략 당시 원주민들이 서양의 화약 무기에 왜 지레 겁을 집어먹었는지 생각해보자. 심지어 르네상스 시기 프랑스에서 화약무기를 저평가하던 시절 '화약은 농부들을 겁주는 데에나 쓸모있다' 고 했는데, 저평가하던 시절조차 사기제압 효과는 확실했다는 뜻. 이런 요인 때문에 동양에서는 머스킷이나 조총보다 원시적인 구식 화약 무기를 퇴역시키지 않고 신호용이나 지원용으로 써먹기도 했고, 머스킷이 발달하기 이전에도 각종 화약 무기를 응용하려고 노력한 시도가 있었다.

머스킷의 위력을 보여주는 사례가 하나 있는데, 1589년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던 북아프리카의 리비아에서 마라부라고 불리는 이슬람교 수도사가 이끄는 반란군 오스만 제국 군대가 주둔한 요새화된 도시들을 공격했으나, 반란군은 기껏해야 화승총 몇 자루 말고는 제대로 된 무기가 없었던 것에 반해 오스만 군대는 요새화된 도시와 포병대의 지원까지 받는 화승총 부대들로 이루어져 있었기 때문에, 수적으로 훨씬 우세했던 반란군은 끝내 오스만 군대가 주둔한 도시들을 함락시키지 못했고 결국 반란군 지도자인 마라부는 배신자에 의해 오스만 군대에게 넘겨져서 비참하게 죽임을 당했으며, 반란 또한 1590년에 이르러 흐지부지 사라져 버렸다.#

3.9. 물가에 쏘는 경우[편집]

화살은 물속에서 유효사거리가 약 3m ~ 7m나 되는데 이를 이용한 '보우 피싱'이라는 낚시법이 존재한다. 보우 피싱은 낚시 포인트 잘 잡고 어느 정도의 활 실력이 뒷받침 된다면 거의 학살에 가깝게 낚아올릴 수 있다. 하지만 다른 낚시꾼 근처에서 쓴다면 배터리로 지지는 것 만큼이나 민폐다. 그리고 이 낚시법은 화살을 작살의 일종으로 보아서 불법행위로 걸릴 수 있으니 되도록이면 하지 않는 것이 좋다.

3.10. 정숙성[편집]

활의 압승. 총은 화약의 힘을 사용하는 태생적인 한계로 소음이 매우 클 수밖에 없지만 활은 시위를 튕기는 소리는 무언가를 세게 때리는 수준으로 확연히 작다. 그러나 활이 암살 용도로 적합하다는 것은 아니다.

머스킷이든 현대 총기든 비교해보면 소음기를 쓴 총기는 여전히 활의 소음보다 큰 편으로, 반대로 활은 소음기를 장착한 총보다 소리가 더 작은 편이다. 평균적으로 총이 107db인 반면 활은 62db 수준. 다만 활과 달리 총은 아음속탄을 사용하고 탄약 구경을 낮추는 등 여러 방법을 추가로 동원하면 100db 이하로도 얼마든지 낮출 수 있고, 이러고도 위력은 활과 비슷한 데다 표적을 맞추기도 훨씬 편하기 때문에 정숙성 때문에 제대로 된 군사작전에서 활을 사용하는 경우는 21세기 이래로 사라진 상황이다.

화살이 느려서 목격당하기 쉽다는 말이 있지만 어디까지나 총탄에 비해 느린 거지, 웬만한 사람의 동체시력으로는 날아오는 게 약간 보이는 게 고작일 정도로 상당히 빠르다. 애초에 멀리서 날아오는 게 눈에 훤히 보일 수준이어서 그냥 쓱 피하거나 방패로 미리 보고 손쉽게 막아낼 정도로 대응이 쉬웠다면 오랜 세월 동안 군용 무기로 쓰였을 리가 없다. 맨몸이었다면 맞은 화살로 인해 전투 불능 상태가 되거나 감염되어서 시름시름 앓다 죽었을 것이다. 사람이 던지는 야구공이나 도구로 쳐내는 테니스공은 그나마 부피가 커서 잘 보이지, 화살은 얇고 가늘어서 인식이 더 어렵다. 그러면서도 구기 종목에 사용되는 공들 보다도 훨씬 빠르다. 사람보다 훨씬 동체시력이 월등한 짐승도 날아오는 화살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하고 몸에 화살이 박혀 고꾸라진다. 판타지 무협소설에서 칼을 휘둘러 화살을 막아내는 묘사가 등장하기도 하는데, 인간의 현저히 느려 터진 반응 속도를 생각하면 실제로는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활의 위력이 낮아서 암살 용도로 사용하기 어렵다. 활은 정말 급소에 적중시키지 못한다면 즉사시키기 힘들다. 총탄의 경우에는 복부나 어깨 정도에 맞았을 때조차 수 분만 넘겨도 기적이지만, 화살은 재수 없게 옷자락이나 갈비뼈에 걸리면 명치에 적중해도 즉사를 못 시킬 수 있다. 실제로 몽골의 기병들은 비단옷과 가죽옷을 겹쳐 입는 것만으로도 대부분의 화살을 거뜬하게 막아냈다. 이 설명이 왜 "정숙성"에 있느냐 하면, 암살 대상을 적중시켰는데 즉사하지 않고 비명을 꽥꽥 질러댄다면 암살 실패에 암살자 본인조차 위태로워진다.

4. 역사[편집]

4.1. 초창기[편집]

가장 초창기의 머스킷은 불이 붙은 밧줄로 점화약을 점화하는 화승식(매치락) 머스킷이었다. 흔히 말하는 화승총이 바로 이것을 가리킨다. 이후 차륜식(휠락)방식에 이어 부싯돌의 마찰을 통해 점화약에 불을 붙이는 수발식 혹은 수석식(플린트락) 머스킷이 등장하였다. 화승식 머스킷과 차륜식 머스킷이 사용되던 시기의 군대는 머스킷 사수뿐 아니라 장창병 등 냉병기로 무장한 병사들도 상당수 있었다. 본격적인 백병전 상황이 되면 냉병기 쪽이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발식 머스킷이 등장할 때쯤에는 이제 보병=머스킷 사수가 되었다. 이는 17세기부터 보병 화력이 강화되고 총격전 비중이 심화되면서 생기는 필연적인 현상이었다. 17세기로 오면서 총병과 창병의 비중은 1:1이 되었으며, 30년 전쟁을 지나면서 총병 비중 증대는 더 심화되었다. 공격할 수 있는 거리가 몇미터에 불과한 창병과 100m 내외의 적에게 위해를 가할 수 있는 총병과 비교해보면 실제 야전에서 어떤 병과가 많을수록 전투에서 유리한지 자명하다. 이를 뒷받침하는 일화로써, 루이 14세가 전장에서 창병들이 머스킷 사수가 죽거나 다치면 머스킷을 이어받아 사용한다는 보고를 받고, 전쟁부 장관에게 수발식 머스킷 및 총검의 전군 보급화를 지시했다는 일화가 있다.

유럽인들이 세계 각국에 식민지를 건설할 때 그 첨병이 되었고, 그를 통해 아메리카 등 유럽 바깥의 문명권에도 전래되어 널리 사용되었다. 때문에 아메리카의 어떤 영국 식민지에서는 머스킷으로 무장한 아메리카 원주민에게 백인이 로 대항하거나 서아프리카에서도 머스킷으로 무장한 흑인 부족들이 석궁을 든 스코틀랜드의 노예상인에게 맞섰다는 식의 웃지 못할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사실 머스킷은 온갖 동네에서 워낙 많이 만들고 팔아 치워서, 유럽인들이 상대해야 할 토착군대도 보유한 총기류의 숫자가 만만치 않은 경우가 흔했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경우 아예 대장장이들이 총기를 자체 생산/수리했는데, 북아메리카에 있던 고품위 노천 철광덕분에 의외로 성능이 매우 좋았다고 한다. 때문에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원주민과 전투를 벌일때 대장간을 우선 순위로 공격하는 일도 생겨났다. 흔히 7년전쟁에 참전한 원주민 전사들이 도끼나 휘둘러대던 원시부족이었다고 오해하곤 하지만, 실제론 절대다수가 머스킷으로 무장한 전사들이었고, 본거지의 이점을 살려 매복 전술까지 적극 활용하였기에 영국군과 프랑스군 모두에게 매우 위협적인 존재였다. 아랍권의 유격전용 전장식 소총인 제자일[26]이 대표적인 예시이다. 유럽의 우위가 확고해진것은 대체로 산업혁명 후이다. 세상사가 무기만으로는 안 된다는 중요한 교훈이다. 그러나 몇몇 부족이나 부대가 복제해 쓰는것과 수십만 대군에게 일괄보급하는건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인지라 이미 머스킷 시절부터 유럽은 지구 곳곳에 식민지를 만들고 다녔고 나폴레옹이 오스만 제국의 최강전력인 맘루크 기병대를 이집트에서 박살냈으며(다만 총기 말고도, 프랑스 기병과 맘루크 기병이 1:1로 붙으면 맘루크가 이기지만, 100:100으로 붙으면 프랑스가 이긴다 등 조직력 측면도 컸다) 심지어 수십년후 청나라를 박살낸 1차 아편전쟁때도 영국군의 제식무기는 머스킷이었다.[27] 즉 후장총이니 기관포니 할 것 없이 이미 수발식 머스킷 시절부터 유럽은 우월한 무력을 갖추고 있었고 후장총과 기관총 이후로는 더더욱 압도적으로 벌어진 것 뿐이다.[28] 유럽에겐 금은보화와 초석(화약의 중요한 재료)이 떼로 굴러 들어온 아메리카가 있었던 덕도 크다. 다만 유럽의 우위는 해상에서 몇 세기 빠르게 확립되었는데,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이 오스만에게 포위당하던 시점에서 유럽 선원들은 인도양은 물론 남중국해, 동해 등 태평양까지 와서 통행세를 삥뜯고 거슬리면 박살내고 다녔다. 그 악명 높다는 왜구도 카라벨에게 털리기 일쑤. 이렇게 바다-항구에 한정되었던 유럽 식민지는 후장총 등이 나온 후 내륙으로 확산된다.[29]

수발식 머스킷이 등장한 이래 거의 100여 년간 구조상의 큰 변화가 없이 사용되다가, 19세기 초중반에 발명된 뇌관 미니에 탄으로 인해서 성능이 크게 개선되었다. 이것이 머스킷 라이플의 최종 진화형으로 당시의 금속 가공 기술과 경제성, 생산성 등의 한계로 잠시 종이 탄피, 금속 탄피 소총 들과 공존하다가 기술의 발전, 무연화약의 등장 이후 새로운 총기 기술의 발달로 점차 도태되다가 사라진다.

4.1.1. 초기 머스킷 전술[편집]

보통 머스킷 사수끼리의 교전은 현대의 총격전에 비하면 짧은 거리에서 이루어졌는데, 머스킷의 정확도와 사거리가 몹시 떨어졌기 때문이다. 머스킷의 명중률은 상기했듯이 몹시 조악해서, 100야드(약 91m)를 초과한 목표물에 대해서의 사격은 명중률이 많이 떨어졌다. 머스킷 소총의 통상 교전거리는 앞에서 언급했듯이 약 60~80m 정도였고, 좀 더 나은 명중률을 얻기 위해 적군의 코앞, 약 40m까지 접근해서 일제사격을 퍼붓는 경우도 있었다. 그 거리에서는 바보 같은 신병이 하늘을 향해 발포하지 않는 이상 맞힐 수 있었다.[30]

게다가 머스킷의 구조상 오히려 높게 쏘지 않아 명중률이 더 나빠졌다는 부정적인 견해도 있다. 애초에 납 구슬인 당시 총알 특성상 거리가 멀어질수록 탄속이 크게 감소하고 현대의 총보다 심한 곡선 탄도를 그릴 수밖에 없는데 명중률이 나쁜 가장 큰 이유는 비회전으로 인한 탄도 불안정 다음으로는 거리에 따라 조준선을 조절하지 않았기 때문이라 볼 수 있다. 숙련된 사냥꾼이나 저격수들은 탄도에 대한 감각이 좋았으니 거리가 멀어지면 조준선을 위로 향했을 것이다. 예를 들면 먼 거리에서는 머리를 조준해서 가슴을 맞추는 식이다. 이렇게 세밀한 운용은 조선시대 사냥꾼이나 나폴레옹 시대 볼티저 경보병처럼 머스킷으로 상대를 저격하는 데 숙련된 인원만이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머스킷이 반동이 강했다는 점도 근거로 들 수 있는데, 현대에도 권총 입문자에게는 반동이 작은 권총을 먼저 추천한다. 처음부터 강한 탄을 쓰면 보통 무의식적으로 반동을 겁내 방아쇠를 당길 때 조준선을 아래로 향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이건 본인이 의식하기도 힘든 일이라 단시간내에 교정하기도 힘들다. 이와 마찬가지로 머스킷도 반동이 강한 편이었으니 무심결에 조준선을 내리는 병사가 많았을 거라 추측할 수 있다.(물론 몇 발 쏘면서 교정하면 된다만, 당시 화약값은 총 1발 쏘는데 10만원 수준의 물가였다. 연습하는 게 쉬운 가격이 아니다.) 전장식 머스킷은 둥근 납탄을 썼기 때문에 현대의 총기에 비해 구경이 무식하게 큰데다 현대 총기처럼 반동을 흡수하기 위한 악세사리가 달린 것도 아니니 체감 반동이 클 수 밖에 없다. 실제로도 총열을 직선으로 놓고 쏘면, 즉 boresight가 상대 가슴을 향할 때 40m 거리에선 대충 복부에 80m 정도면 대개 허리 아래에 맞게 된다. 당시 소총병의 전투 양상과 조준장치를 고려하면 대략 80m 부근에서 교전을 하고 확실히 맞추려면 40m이내가 되는 것은 당연한 셈. 그정도 거리라면 앞서 말했듯이 대충 조준한 곳보다 10~20cm 아래쪽으로 떨어질 뿐이니 어지간히 아래 방향으로 쏘지 않은 다음에야 표적에 맞는다. '낮게 쏴라'는 명령은 근접 사격 시 해당한다.

이런 이유로 인해 한 발 쏘자 상대 진영이 무너져 착검돌격을 하는 경우도 많았지만, 상대의 진영이 견고하다면 같은 자리를 지키면서 연속적으로 사격을 하기도 하였다. 또한 보통의 병사들은 횡대 등 조밀한 진형을 짜서 사격하였다.[31] 이는 활을 사용한 시대부터 이어져온 일제사격[32] 방식이였지만 활은 냉병기 시대에도 보조적인 위치였기 때문에 전열보병 처럼 전면에서 사용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화기 시대의 머스킷은 활보다 우월한 살상력을 가진 대신 순간 화력(연사)이 부족하면서도 주력이 되었기에 전면(총검의 등장)에서 화망을 구성하는 것으로 총기의 낮은 명중률을 보강하고, 높은 제압력을 가지며, 백병전 상황에서의 우위를 점할 필요가 있었다.

또한 탄막사격의 경우 흑색화약의 연기 때문이기도 했다. 서너명이라면 모를까 수십 수백명이 일제사격을 가하면 그 연기가 시야를 가리는데, 2발 3발째를 쏘다보면 진짜 앞이 안보일 정도가 된다. 머스킷 숫자가 많아질수록 개별 명중률이 낮아지는 것.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 머스킷으로도 나름대로 정밀한 개인별 조준 사격이 실시되었다. 나폴레옹 전쟁 당시 프랑스군의 볼티져 부대를 비롯하여 각국의 경보병(Light Infantry)들은 전열을 짜지 않고 자연적 엄폐물을 이용하여 2인 1개조로 사격전을 펼치면서 싸우는 전술(스커미시)을 즐겨 활용하였다. 이러한 경보병들은 추가적으로 사격 훈련을 받기도 하였다.

머스킷의 정확도나 사거리가 현대 총기에 비해 몹시 떨어졌다는 점 때문에, 당시 전쟁이 사격보다는 총검 돌격을 위시한 백병전만으로 결정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대표적인 오해 중 하나다. 비록 머스킷이 현대 화기에 비해서 정확도와 사정거리가 떨어진다고 하지만 얘도 일단은 총포다. 유효 사거리 내에서, 숙련된 머스킷 사수들이 퍼붓는 일제사격을 받으면 그 누구도 목숨을 보장하기 어려웠다. 단적인 예로 워털루 전투에서 영국군을 향해 돌격하던 프랑스군의 제국 근위대[33]는 능선 뒤에 엄폐하고 있던 영국군의 머스킷 일제사격을 얻어맞고 제1파가 박살났다. 총검 돌격이 당시 보병의 결전 기술로 쓰인 진짜 이유는 앞서 언급한 장전 속도 때문이다. 방금 언급한 워털루의 영국군도,(당시 세계 최고의 장전 속도를 가졌음에도!) 이어진 제4 근위 샤쇠르 연대의 돌격에 그대로 모랄빵 났다. 참고로 나폴레옹 전쟁 후반기로 가면 유달리 프랑스군이 총검 돌격과 근접전에 집착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이는 러시아와 스페인 등지에서 숙련병과 장교들이 다수 희생되었고 물자 문제로 사격전으로 좋은 결과를 보기 힘들었기 때문이지 총이 문제는 아니었다.[34]

머스킷도 맞추기만 하면 무지막지한 피해를 입힐 수 있다는 걸 입증하는 사례가 하나 있는데, 해부학, 의학사를 공부하다 보면 나오는 일화 중에는 머스킷 오발 사고로 스스로의 배때지를 쏜 사람이(장교) 구멍난 위장을 몸 밖으로 노출한 채로 병상에 누워 의사 양반이 위장 속 내용물과 위장의 역할을 연구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는 해괴한 이야기가 있다.(위의 음식물소화) 잠깐 그러면 장기가 밖으로 적출되었는데도 살아있었다는거야?

4.2. 19세기[편집]

나폴레옹 전쟁 이후 머스킷은 두 가지 발명품 덕에 더욱 발전하게 된다. 첫 번째는 뇌관(Percussion cap)이고, 두 번째는 미니에 탄(Minie ball)이었다. 이러한 발전의 바탕에는 특허제도가 있었고, 여전히 전장식 활강총을 주력으로 사용한 타대륙과 유럽의 무력 격차가 크게 벌어지기 시작한다.[35]

첫 영국의 포사이스에 의해 발명된 뇌관은 작은 금속관 안에 뇌산염을 넣은 물건으로, 충격을 가하면 불꽃을 일으킨다. 그 이전까지의 머스킷은 화약 접시에 부은 점화약에 부싯돌로 불꽃을 일으켜 총신 안의 장약을 터뜨리는 수발식이었는데 수발식 머스킷은 비가 오거나 해서 점화약이 젖으면 발사 자체를 할 수 없다는 치명적 문제점이 있었다. 그러나 점화약이 흑색화약이 아닌 뇌관으로 대체되면서 병사들은 날씨에 상관없이 머스킷을 사격할 수 있게 되었다. 덤으로 장전 절차도 약간 편리해졌다.(화약 접시에 화약을 부을 필요 없이 뇌관만 끼우면 되니까) 게다가 장전시 불발률도 떨어졌다. 수석식 총의 불발률은 25%(...)[36] 그래서 불발시 행동 군율까지 다 정해졌고, 그 절차를 다 거치면 교전 중 도주도(!!!) 허용되었다. 하지만 어차피 그 사이 동료가 죽고 그 총을 받아서 쏘게 되니...[37] 우린 안될꺼야 아마...

두 번째인 미니에탄은 프랑스의 미니에가 발명한 머스킷용 탄환이다. 미니에탄에 대해 설명하려면 우선 당시의 라이플(선조총)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

강선이 없는 머스킷이 전장을 지배하던 18세기 이전부터도, 이미 총열에 강선이 새겨진 총(라이플)은 존재했으나 군용으로 광범위하게 쓰이지는 못했다. 우선 당시 기술로는 총열에 강선을 새기는 것이 비싸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였지만, 더 큰 이유는 당시 라이플의 경우 장전에 걸리는 시간이 머스킷보다도 더 길다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라이플의 강선이 효과를 보려면 탄환이 강선에 꽉 낄 정도로 맞물려야 하는데, 그를 위해서 탄환 한발 한발을 가죽이나 헝겊으로 감싸서 총열에 밀어넣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 과정 자체도 번거로울 뿐더러 헝겊에 감싸여 지름이 커진 탄환은 장전봉으로 밀어넣는 것도 힘들었다. 그래서 당시 라이플 사수는 심지어 장전봉과는 별도로 탄환을 총열 안에 밀어넣는 'bullet starter'라는 별도의 도구를 가지고 다녀야 할 정도였다.# 그런 전용도구를 가지고서도 3분에 한발 꼴로 쏴댔으니 숙련되면 1분에 세발 쏘는 머스킷과 정면 화력전을 하면 당연히 이길 수가 없어서 일반 보병의 무기는 여전히 머스킷이 될 수밖엔 없었다,

그러나 미니에탄은 당시 라이플의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해주었다. 1849년 프랑스 육군 장교 클로드-에티엔 미니에가 개발한 미니에탄은 이전까지의 머스킷 탄환처럼 공 모양이 아니라 원추형으로, 뒷부분이 움푹 패여 있었다. 이 탄환을 머스킷에 넣고 발사하면, 발사시의 화약 연소 가스가 미니에탄의 크기를 확장시켜서 탄환이 강선에 딱 맞물리게 된다. 즉 미니에 탄환을 사용하면 비교적 빠른(즉 일반적인 머스킷 수준의) 장전 속도로 강선총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단지 장전 속도뿐 아니라, 기본적으로 미니에탄은 유선형이므로 공 모양인 구식 머스킷 탄환보다 정확도나 사거리라는 측면에서 우월하다. 즉 미니에탄 덕택에 머스킷은 장전 속도와 정확도&사거리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19세기 중반 이후의 머스킷은 이전 나폴레옹 전쟁 시기의 머스킷과는 비교할 수 없는 사정거리와 발사 속도, 그리고 신뢰성을 가진 무기로 진화하였다. 당장 뇌관을 사용하는 머스킷의 경우 총열 내부의 화약 자체가 젖지 않는 한 어지간해서는 불발될 일이 없다는 것만 생각해도 장족의 발전이다. 그래서 이 시기의 머스킷을 이전 시기의 활강(강선이 없는) 머스킷과 구분하여 보통 강선 머스킷(Rifled-musket)[38]이라 부른다. 강선 머스킷은 19세기 중후반까지 쓰였으나 후장식 총기와 금속 탄피 탄환이 발명되고 개량되어 점차 널리 보급되면서 사라져갔다.

하지만 막 종이 탄피를 이용한 후장식 소총인 드라이제 소총이 등장했던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이나 금속 탄피를 이용한 연발 소총 헨리 소총이 등장한 미국 남북 전쟁 시기에도 전장식 소총은 여기저기서 잘만 쓰였다. 여기에는 크게 두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당시 초창기 후장식 소총들의 성능이 생각만큼 그렇게 강력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니들건이라 불리던 프로이센의 드라이제 소총은 비효율적인 종이 탄피의 구조로 인해 만들어진 바늘 모양 공이가 툭하면 부러지기 일쑤였으며, 부족한 기술력으로 약실이 제대로 폐쇄되지 않아 틈으로 화약 연소 가스가 뿜어져 사수의 얼굴을 구워버리는(...) 사태가 종종 발생했다. 후에 나오는 금속 탄피제 헨리 소총은 작동은 좀 더 매끄러웠으나 총기의 구조가 약해 강한 탄피를 사용할 수 없었다.[39]

둘째는 단연 가격이다. 말할 것도 없이 당시의 종이 탄피 후장식 소총은 머스킷 라이플에 비해 3배 이상 비쌌으며, 헨리 라이플은 그보다도 훨씬 더 비쌌다. 더군다나 금속제 탄피 역시 등장 초기에는 제조 비용이 만만찮았다.[40] 당연히 군대의 제식무기는 대량 생산하여 대량 지급하여야 하는데 가성비 면에서 대부분의 국가는 기존에 산업 설비까지 다 갖춰진 전장식 소총을 버릴 수가 없었다. 그 때문에 남북전쟁에서 남군은 울며 겨자먹기로 머스킷 소총을 사용할 때 상대적으로 경제력과 기술이 뛰어났던 북군은 장탄수 16의 헨리 소총을 마구 쏴재꼈으며 결국 '더러운 양키 새퀴들이 월요일에 장전해서 일주일 내내 쏴대는 총'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초창기 리볼버들도 사실상 작동방식 자체는 머스킷과 같았다. 실린더에 흑색화약과 탄환을 넣고 총에 달린 램로드로 꽉 눌러준 후 실린더 뒷부분에 뇌관 캡을 달아 점화시키는 방식. 비단 콜트뿐 아니라 레밍턴, STARR, Beaumont-Adams등 당대 리볼버가 전부 다 그랬다.

4.3. 20세기 이후[편집]

현재는 미국 등지에서 민수용으로만 사용되는데, 그런데도 소지 허가가 필요 없다나 뭐라나. 사실 전장식 총기는 미국 연방 총기 법률로는 "총"이 아니다. 앤티크(골동품), 레포츠 도구(활과 마찬가지)로 구분될 뿐... 그래서 딱히 등록할 필요도 없고, 대형 마트에서 활이나 나이프와 같이 즉석으로 판매한다. 제아무리 미국이라 해도 실총 구매 시에는 반드시 신분 확인(범죄 경력 확인)[41] 절차가 들어가는데, 머스킷은 총 취급을 하지 않다 보니 돈만 내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 자리에서 판다. 물론 법률상 총이 아닐 뿐 위험한 도구이긴 마찬가지이기에, 지역에 따라서는 총기법이 아닌 별개 법률로도 규제할 수 있다. 미국 연방 법률상 도검은 규제되지 않지만, 위험한 물건이니 거리에 차고 다니거나 남한테 휘두르면 경찰에 잡혀가듯이 말이다.

사실 머스킷으로는 큰 위협을 주기 어렵다는 것도 현실이다. 현대식 총기 수억 자루가 돌아다니는 미국에서 머스킷으로 누군가를 겨누는 순간...자동소총으로 따다다다당!!!

매치락, 플린트락과 퍼커션 캡 방식 모두 리프로덕션 되고 있다. 활이 그렇듯 이런 재래식 총기는 나름대로 팬 층이 있기에, 되도록 재래식을 재현한 물건을 원하는 사람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플린트락과 퍼커션 캡은 총포사에 가면 대부분 비치하고 있을 정도로 찾아보기 쉽다. 화승식은 상당히 드물지만 리인액터 시장이 있기 때문에 인터넷 주문으로 조달할 수 있을 정도는 된다.

하지만 스톡이 목재가 아닌 카본 파이버로 되어 있고 피카티니 레일이 장착된 신소재 머스킷도 생산되고 있다. 생김새는 딱 보면 볼트액션이나 중절식 엽총 같지만, 사실은 전장식이며 볼트액션이나 중절 부위처럼 생긴 그쪽으로는 209 프라이머를 장전한다. 플래툰에 실린 기사에 따르면, 현대 총기와는 비교할 수 없는 화염과 연기의 양에 매료된 마니아들이 주로 찾는다고 한다. 그 외에도 미국은 사냥 시즌에 흑색화약 총기만 쓸 수 있게 하는 특례 기간이 따로 있어서 이 시기에 사냥하고 싶어서 사냥용 머스킷을 사는 사람도 있고, 아직 실총을 구매할 수 없는 나이의 청소년들이 머스킷과 구식 C&B 흑색화약 리볼버로 총기 관련 취미에 입문하는 경우도 있다.

여기서 좀 더 나가면 최신식인 전기 격발식이 있다. 흑색화약이 전기에 민감하다고는 하지만 사실 요새 나오는 흑색화약은 전부 흑연 코팅을 해서 80만 볼트 스턴 건으로 지져도 기폭 하지 않는다. 그래서 캐퍼시터로 승압한 전기를 챔버 쪽에 흘려서 전기 아크를 일으켜 그 불꽃으로 화약을 점화한다고 한다. 방아쇠가 그냥 스위치일 뿐이다 보니, 일반 뇌관을 사용하는 머스킷보다 훨씬 방아쇠 반응이 빠르다는 게 장점. 뇌관 교체조차 필요 없기에 궁극의 머스킷으로 불리지만... 시장의 반응은 영 아니라서 시범적으로 팔리고 만 모양.

그러나 머스킷은 무연화약을 쓸 수는 없는데, 옛날 머스킷은 무연화약을 쓰기에는 내구도가 약해서 한번 발사하면 총이 폭발할 확률이 높다. 사실 강력한 현대 강재로 무연화약을 사용하는 현대식 머스킷을 절대 못 만드는 것은 아니며, Savage 10ML 같은 실제 발매 제품도 있었다. 하지만 흑색화약과 달리 무연화약은 화력이 훨씬 높다보니 미세한 화약 분량 차이나 탄두를 밀어넣은 정도 차이로도 약실 압력이 크게 변할 수 있어, 팔아놓고 보니 총이 터지는 사고가 빈발했다. 탄피식 총이라면 장약과 격발환경에 일관성이 보장되는데, 화약을 따로 넣는 머스킷은 그게 안 되던 것. 그래서 새비지의 물건도 단종되고, 현재 시장에는 중고나 마이너한 업체에서 만드는 것만 남았다.

흑색화약에서도 꽤나 발전이 이루어졌는데, 옛날식 그대로 알갱이형(코닝 거친) 진짜 흑색화약도 판매하지만, 유사 흑색화약(Black powder substitute)이라고 하여 흑색화약과 같은 부피로 같은 화력을 내며(요건 제품마다 좀 다르다) 비슷하게 연기가 나지만, 연소물이 덜 남고 깨끗하게 잘 타고, 효율적이고, 더 안정적이라 무연화약처럼 편하게 다룰 수 있는[42] 물건이라 근래의 머스킷 사수들이 많이들 애용한다. 파이로덱스, 블랙 맥, 트리플 세븐 등의 제품이 있다. 다만 유사 흑색화약은 점화 온도가 좀 높은 편이라 플린트락으로는 불발이 잘 나고, 최소한 퍼커션 캡이나 현대 총기용 프라이머를 쓰는 게 좋다. 여기서 한 단계 더 나가서, 화약을 분말/알갱이로 파는 게 아니라 총열 크기에 쏙 들어가는 원통형 고형 화약으로도 판매한다. 미리 크기가 결정돼 있기에, 몇 개의 원통을 넣으면 되는지만 정하면 되므로 항상 계량컵이 필요한 분말보다 필드에서 다루기 쉽다. 분말보다 연소 효율이나 안정성도 더 우수하다.
 
뇌관 역시 재래식 구리 캡을 쓰는 것도 있지만, 폴리머 스톡을 사용하는 신형 머스킷은 산탄용 뇌관인 209 프라이머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플린트락 총기는 예나 지금이나 그냥 구식 플린트락 구조를 계속 쓴다.


그리고 양덕들은 이걸 또 마개조해서 택티컬로 굴려먹는다. 커스텀 개머리판에 권총 손잡이에 홀로그래픽 조준기에 컴펜세이터까지 별별 게 다 달린 데다 총열은 거의 기관단총 수준으로 짧게 잘랐다.[43]

5. 머스킷을 사용한 실존 인물이나 단체[편집]

5.1. 위 항목의 인물이나 단체에서 유래한 미디어 상의 인물이나 단체[편집]

6. 머스킷을 사용하는 가상의 인물이나 단체[편집]

워낙에 고풍스러운 매력이 느껴지기 때문에 각종 창작물의 캐릭터들이 사용한다. 문제는 작 중 연도가 온전한 현대나 미래여도 사용한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