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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전역해전도(朝鮮戰役海戰圖) - 칠천량 해전?

USS DELTA VECTOR 2022. 9. 5. 14:53

조선전역해전도(朝鮮戰役海戰圖) - 칠천량 해전?

 

 

 

명량대첩이 아니라 칠천량 해전?

 

 

 다음은 두 번째 주장의 글입니다. 그림과 대조해 보면서 생각해 보세요.

 

운영자 알림 : 도깨비 뉴스가 지난 2008년 3월과 8월1일, 두 차례 소개했던 임진왜란 당시의 ‘조선전역해전도’가 명량해전을 그린 것이 아니라 원균이 왜 수군에 참패한 칠천량 해전을 묘사한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됐습니다.
8월1일 기사에서 독자 '밀메냐'님은 "이 그림은 칠전량 해전도이며 플래툰이라는 군사잡지 7월호에서 아주 자세하게 나와 있다"는 댓글을 올렸습니다. 확인 결과 플래툰 7월호에 김세랑 기자가 쓴 기사였습니다. 그는 지난 3월 도깨비 뉴스에 이 그림이 소개된 뒤 그림의 정체를 추적해 오다 지난 5월 일본 내 이 그림의 소재지를 확인하고 곧바로 일본으로 날아가 그림을 촬영하고 상세한 내용을 취재했습니다.
그는 플래툰에 실린 기사에서 그림에 거북선으로 추정되는 배가 등장하는 점 등 그림과 관련한 여러 가지 정황을 들어 이 그림은 ‘명량 해전도’가 아니라 ‘칠천량 해전도’ 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도깨비 뉴스는 이 그림과 관련한 기사를 이미 두 차례나 올렸지만 보다 정확한 내용을 알려 드리기 위해 플래툰 및 김세랑 기자로부터 기사를 제공 받아 독자 여러분께 다시 한 번 소개합니다.

▼ 다음은 플래툰 7월호에 실린 김세랑 기자의 기사입니다 ▼

제목 : 
화제의 임진왜란 그림, 그 정체를 풀어내다!


얼마 전 인터넷상에서 일본에 있다는 「조선역해전도」라는 그림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임진왜란 시기를 배경으로 조선수군과 일본수군간의 해전을 그린 이 그림은 한때 '왜의 종군화가가 그린 명량해전도'로 알려졌었고, 그 치밀한 묘사로 인해 현재 방영중인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과 비교의 대상이 되며 화제가 되었다.

특히 이 그림이 그간 우리가 알고 있거나 영화나 드라마에서 묘사되던 우리 군사들의 모습과는 상당히 다른, 막강한 장비와 전투력을 가진 병사들로 묘사되어 있다는 점이 논란이 되었는데, 바로 그 점이 내게는 오히려 이 그림에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본지를 구독하시는 분들은 이미 잘 알고 계시겠지만, 본 기자는 오래전부터 우리나라의 전통 군사 사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특히 거북 배와 판옥선, 이순신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는데, 이 그림은 그동안 공부해온 본 기자의 생각과 일치하는 장면이 상당히 많았기 때문이다.

인터넷에서 이 그림이 화제가 될 당시에는 그 화질이 선명치 않고 그 진위에 대한 논란이 분분했던 바, 본 기자는 일단 이 그림의 진위를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했고, 이 그림의 소재에 관해 인터넷에서 얻은 단편적인 기초정보는 이 그림이 일본의 아오키 화랑이라는 곳에 소장되어 있다는 것과 과거 KBS의 역사스페셜 코너에 잠시 등장한 바 있다는 것,

이 한 가지 단서를 가지고 한국과 일본에 이 그림의 존재를 수소문한지 이틀째, 마침내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는 일본의 아오키 화랑(일본에는 같은 이름의 화랑이 무지 많았다)과 전화통화가 되어 그림의 존재를 확인했고, 곧바로 일본으로 날아가 지난 5월 14일에 마침내 이 그림을 직접 만지고 볼 수 있었다.

일본에 도착 하자마자 도쿄 시내로 도착해 미리 적어놓은 주소를 가지고 찾아간 아오키 갤러리는 도쿄 시내 중에서도 가장 번화가라 할 수 있는 긴자 거리 한가운데 있었다. 건물의 2층에 위치한 갤러리는 언뜻 이 그림과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현대적인 그림 위주로 채워져 있었고, 주인이신 아오키씨는 백발이 성성한 마음씨 좋아 보이는 할아버지이셨다. 기자를 보자마자 먼 곳에서 이 그림 한 점을 보기위해 찾아온 것에 대해 고맙다며 손을 잡아끈다. 정작 그림은 이 갤러리에 있지 않다며 버스에 올라 도쿄베이를 지나 한 20분쯤 달렸을까? 마침내 한 빌딩에 들어서게 되었는데, 전체가 창고로 된 이 건물의 작은 방 하나가 바로 조선전역해전도가 보관되어 있는 곳이었다.

종이와 비단으로 만들어진 고급스러운 보관용 상자를 열자 두 폭으로 접혀진 병풍형의 그림이 나온다. 펼쳐진 그림은 약 100호 정도의 대작으로 미술을 전공한 필자가 보기에도 상당한 수작임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전통적인 일본화의 양식을 따르면서 섬세한 필치와 특유의 세밀한 묘사, 박진감 넘치는 구도 등이 아마추어의 그림이나 고졸한 옛 그림과는 달랐으며, 뒤에 설명하겠지만 이 그림이 겪었던 여정에 비하면 보존상태가 아주 뛰어나서 막 그려 낸듯한 생생함이 느껴질 정도였다.

애초 인터넷에서는 이 그림의 진위에 관한 논란이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인터넷에 떠 돌아다니는 그림은 크기가 아주 작고 화질이 선명하지 못해서 대단히 오래된 그림처럼 보이기도 했고, 반면 옛 그림 치고는 그 묘사나 기법이 너무나도 뛰어났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이야기 하자면 이 그림은 1940년 전후로 그려진 것으로 화가는 지금은 작고한 [오오타 텐요오- 太田天洋: 1884-1946]라는 유명한 일본의 역사 화가이다.
그는 도쿄출신의 일본 전통화가로, 도쿄 미술학교를 졸업하고 '구 문전 추천작가'로 활약했으며 주로 역사적인 소재를 배경으로 한 그림을 주로 그려 수많은 박물관에 소장되는 등, 일본에서는 그 분야의 대가로 손꼽히는 사람이다. 이 그림이 이토록 정밀할 수 있었던 것은 작가 자신이 뛰어난 역사전문가이었던 데다가 국내에는 알려지지 않은 일본 측의 조선수군과 조선 선박에 대한 연구 자료를 토대로 그려진 그림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구한말까지도 조선에는 전선이 일부 방치되어 남아있었는데, 이를 최초로 학술적으로 연구한 것은 일본인들이었고, 그 자료는 모두 일본으로 건너갔을 뿐만 아니라 아직 제대로 공개되고 있지 않은 자료가 많다.

과거 일본 제국 해군에는 이순신 장군을 거의 신격화해서 숭배하는 전통이 있었는데, 그 정점에는 일본 해군 최고의 영웅인 도고 제독이 있다.(올해가 그의 기념비적인 러ㆍ일 해전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도고 제독은 생전에 자신은 이순신 제독의 발가락 끝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공언했고, 러시아와의 전투를 앞두고는 이순신에게 승전을 기원하는 제사를 올렸을 뿐만 아니라 실제 전투에 들어가서는 이순신의 학익진 전법과 유사한 '정자 진법'을 사용해 대승을 거둔 장본인이다. 그런 도고 제독 휘하의 일본 제국 해군은 이순신의 연구와 조선수군 및 그 전술에 관한 정보수집에 열을 올린 것은 당연하고, 실제로 이 그림 역시 그런 연구와 자료를 바탕으로 그려진 것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특히나 이 그림이 2차 대전 중 일본 해군성의 의뢰로 그려져 일본 해군의 '수교사(해군 장교 집합소)'에 걸려있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 그림이 가지고 있는 가치와 무게를 짐작하고 남는다.

당시 일본군의 모든 물품과 장비들은 미군에 의해 대부분 압수되거나 전리품으로 뺏기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 그림은 당시 ‘야마모토 켄베에’ 대장의 초상화와 함께 도쿄의 모처로 반출되어 미군에 접수되는 것을 면했다고 한다.

 

 

 

조선전역해전도(朝鮮戰役海戰圖) - 칠천량 해전?

 

 

 

작품의 정확한 이름은 [조선전역해전도: 朝鮮戰役海戰圖]이며, 일본 측은 구루지마 해적(수군), 아군은 경상우도 수군이다.


애초 이 그림을 처음 인터넷 상에서 접했을 때와 일본에서 처음으로 그림을 봤을 때에는 '통제영 거북배'가 등장한다는 점과 전체적인 화면에서 아군의 군세가 너무도 강하고 당당해 보여서 전라좌수군, 특히 이순신 장군 좌선과의 전투모습을 그린 것이 아닌가? 했는데, 우리 수군 배마다 걸려있는 기치에 정확히 '경상우도수군'이라는 명문이 쓰여 있어, 이 그림이 명량해전 당시 ‘이순신에게 당하는 구루지마 수군’이 아니라 원균이 지휘하는 ‘경상우수군의 판옥선을 구루지마 수군이 접수하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국 이 그림은 애초 인터넷상에서 알려진 것처럼 명량해전을 묘사한 것이 아니라 원균이 거북선을 포함한 조선수군 전체를 지휘했던 시기의 유일한 전투인 ‘칠천량 패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 그림은 당시의 일을 있는 그대로 그린 '종군 기록화'로, 일본에서 아무생각 없이 상상력만으로 그려진 '만화 같은 그림'도 아니며, 당대의 뛰어난 역사화가가 임진왜란 기간 중 유일하게 일본 수군이 기를 폈던 칠천량 해전을 배경으로 자신이 알고 있던 모든 '역사적 지식을 총동원해 재해석한 그림'이라고 하겠다.
그림이 그려진 의도 자체가 일본해군의 무용을 나타내기 위한 일종의 '선전화'라는 점을 굳이 감안하지 않더라도 이 그림은 상당한 고증을 거쳐 그려진 그림이고, 반면 일본에서 그려진 만큼 아군의 묘사에 있어서는 다소 고증이 불분명한 상태로 그려진 부분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그림은 부분적인 장면의 고증정도를 떠나 대단히 뛰어난 수준을 보여주는 작품이라는 점에는 분명하고, 그동안 우리 쪽의 민족 기록화 등에서 두리뭉실 넘어간 부분들까지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존재가치가 높다고 하겠다.

 

 

 

 

 

이 그림의 소장자인 일본인 아오키씨. 그는 도쿄의 긴자에 자신의 이름을 딴 ‘아오키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다.
이 작품을 소장한 이후로 작품의 배경이 된 임진왜란에 대해 공부를 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이 과정에서 이순신이란 위대한 인물을 알게 되었다고. 아울러 그는 “일본에서는 아는 사람들이 거의 없지만 일본의 해군영웅인 도고 제독이 이순신 장군을 대단히 숭배했었다”라며 이 작품의 배경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었다.

 

 

 

 

 

 

 

 

 

 

 

 

 

 

상급 지휘관으로 보이는 장수. 지휘봉을 들고 전투를 지시하고 있다.
붉은색 1)두정갑에 2)환도와 활을 차고 있다.

 

 

 

 

 

 

 

 

 

누구라도 쉽게 화살을 연속으로 발사할 수 있는 3)'수노기'를 사용하는 병사들. 위쪽에 달린 손잡이를 상하로 움직이면 화살이 발사되는 무기로 아주 오래전부터 사용된 무기다.

 

 

 

 

환도를 능숙하게 다루는 환도수. 두정갑을 입고 머리에는 조선시대의 군모인 4)전립을 쓰고 있다. 전립

에 장식이 없고 평복을 입은 것으로 보아 장수가 아닌 병졸임을 알 수 있다.

 

 

 

 

 

 

 

 

쇠도리깨인 5)'편곤'을 사용하는 병사.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편곤은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타격무기이다.

 

 

 

 

 

 

 

 

 

‘귀면장패'를 앞세우고 화살과 화전 등을 발사하는 조선군의 '사후선'.
이 배는 배의 선미 쪽으로 한국배의 전통적인 키의 모습이 잘 보인다.
아울러 이 병사들은 일반적인 조선의 각궁과 화전, 수노기가 총동원 되어 당시 조선군의 화살 무기들이 망라되어 있는데, 실제로 이들이 쏜 화살의 종류도 각기 다른 것이 묘사되어 있다.(날아가는 화살과 적선에 박힌 화살을 보면 폭발하는 '화전'과 일반 활에서 발사되는 '장전', 짧은 화살인 ‘애기살’이 함께 보인다. 애기살은 조선시대 궁시류 중 최고의 무기라 할 수 있는 ‘편전’의 화살이자 수노기의 화살로도 쓰인다.

 

 

 

 

 

 

노수들 사이에서 '화전'을 활에 걸어 쏘는 병사.
일부 인터넷 상에서는 이것을 6)'신기전'이라고 했는데, 이것은 신기전 화살이 아니라 화약통이 달린 '화전'이다.
방패판 뒤로 등나무를 엮어 만든 둥근 방패인 등패가 보인다.
앞에 닻줄을 감아올리는 물레가 자리하고 있다.
갑옷의 색상이 아주 다양한 것을 볼 수 있는데, 실제로 당시 갑옷은 전통적인 오방색을 이용해 만들어졌다.

 

 

 

 

 

 

 

 

 

 

 

 

 

검과 원방패를 사용하는 장수.
이 그림에서는 직도인 검과 환도가 뒤섞여 사용되는 것으로 나오는데, 이것이 오히려 당시 실제 상황에 가깝다고 하겠다.

 

 

 

 

 

 

 

질려포 통, 또는 산화포 통으로 보이는 투석 식 화약무기를 사용하는 조선수군.
이 그림에서는 이 장면 외에도 포 통이 많이 보이며, 바로 뒤에는 요즘의 수류탄이라 할 수 있는 것이 보인다.

 

 

 

 

 

 

 

적을 찍어 걸어 올리는 '사조구'와 창을 쓰는 창수들.
이 그림에서는 흔히 삼지창이라 부르는 '당파'외에도 다양한 창이 등장한다.
아울러 이 그림에서는 갑주를 완전히 다 갖추지 않았어도 대부분 장비를 갖춘 것이 보인다.

 

 

 

 

 

 

 

그림의 왼쪽 구석에는 통제영 거북배의 모습이 보인다. 전반적으로 전란 당시의 고증에 충실한 것으로, 등판에 장갑이 되어 있지 않은 대신 무수한 창칼이 솟아 있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선체 아래쪽에는 귀면을 그려 넣은 것이 뚜렷하게 보인다. 게다가 이 그림에서는 판옥선에는 일반적인 경우와는 달리 귀면이 부조의 형태로 조각되어 있고 거북 배에는 좀 더 입체적인 용두가 달려있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 총통 그림은 판옥선에 탑재되어 있는 것인데, 그림에서는 인물들의 활동상에 초점을 맞추느라 정작 총통은 2문 밖에 묘사되어 있지 않다. 이 그림의 화포는 왜 그런지 모두 불랑기포가 장착된 것으로 묘사하고 있으며, 눈에 띄는 것은 총통을 동차에 고정해 사용한 것으로 묘사하는 한국 측의 통념과는 달리 모두 화포를 지지대에 거치해 사용하고 있다.(고정식 거치대를 사용했을 가능성 자체를 부정하진 않지만, 모든 화포가 고정식 거치대에서 운용된 것은 아니었다)
불랑기포는 당시 조선군에 의해 사용되기는 했지만, 전선에 탑재된 총통은 이미 기록에도 나와 있듯이 천. 지. 현. 황의 총통이 일반적이었다.

 

 

 

 

 

 

 

일본의 배는 당시 일본수군의 주력선이라 할 수 있는 '세키부네'로, 대장급들이 타는 기함이자 판옥선과 비슷한 급인 '아다케' 보다는 작은 배이다.
그 크기는 판옥선의 2/3에 채 미치질 못해 당시 판옥선이 얼마나 튼튼한 무적의 함선이었는지를 알 수 있게 한다.
실제 판옥선중 큰 것은 30미터를 넘었고, 배 자체도 아주 두꺼운 판재를 사용해 만들었기 때문에 배로 들이 받는 공격을 포함한 일본의 어떤 공격으로도 치명적인 손상을 줄 수 없는 무적의 전함이었기에 당시 일본 수군들은 판옥선을 ‘바다의 성채’라고 묘사하기도 했다.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판옥선의 선수부분의 모습.
방패 판에 귀면이 그려져 강력한 분위기를 풍긴다.
눈여겨 볼 것은 포혈이 위쪽 방패판 뿐만 아니라 1층에도 뚫려있는데, 이것 역시 국내에서도 최근 힘을 얻어 가고 있는 학설로, 실제로 화포는 1, 2층 모두에서 운용 가능했을 것이란 것이다.
사다리를 걸고 배로 오르려고 하는 일본군과 이를 저지하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조선수군의 모습이 생생하다.
이 판옥선에는 특이하게 1층과 2층 갑판 사이에 귀면을 부조형태로 달고 있는 것으로 그려졌는데, 이와 비슷한 예로는 '수군조련진도'에 나와 있는 통제영좌선이 비슷한 예라고 하겠지만 수군조련진도에 나와 있는 전선들은 귀면이 모두 선체 아래쪽인 이물비우에 달려있다.

 

 

 

 

 

 

 

 

 

아마도 전원이 전사한 것으로 보이는 조선수군의 사후선.
이것은 배의 뒤쪽인 고물 쪽으로 조선배의 특징 중 하나인 큼직한 키가 잘 나타나 있다.
두 자루의 낫 같이 생긴 장비가 눈에 띄는데, 이것은 창처럼 길 다란 장대에 거대한 날을 단 것으로 적을 베거나 찍어 올리는 용도로 사용하는 ‘장병 검’이다. 장병 검은 한번 휘두르면 숱한 적이 당해낼 수 없었다고 한다.

 

 

 

 

 

 

 

이 세키부네에는 특이하게 화포 한 문이 장착되어 있는데, 밧줄을 이용해 공중에 매달아 놓은 상태로 운용을 해 위력이 크게 감소할 수밖에 없는데, 이것 역시 고증에 충실한 표현으로 당시만 해도 일본은 화포의 적절한 운용개념이 없었다.

 

 

 

 

 

 

 

 

 

 

 

 

 

 

 

 

 

 

 

 

판옥선의 지휘부인 판옥누각.
바로 이 때문에 판옥선이란 이름이 붙었으며, 다른 말로는 '장대'라고도 한다.
장대는 배의 후미부에 위치한 것으로 묘사되고 있는데, 이는 주로 장대를 전선의 한 가운데 설치해 놓은 것으로 묘사하는 우리 측의 고증과 다른 부분이다.
실제로 그동안 재현된 판옥선들은 대부분 장대의 위치가 잘못되어 있어 두 대의 돛대를 눕히기 어렵게 되어 있어 좀 더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다.
본 기자는 개인적으로 장대는 두 대의 돛 사이에 위치하되 마치 요즘의 항공모함의 아일랜드처럼 한쪽으로 치우쳐져 있었다고 생각하는데, 이와 같은 것은 판옥선의 개념도라 할 수 있는 「각선도본의 판옥선 그림에서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

 

 

 

 

 

 

 

본에서 발행된 일본해군 역사서.
조선전역해전도가 표지를 장식하고 있다.
전통적인 역사서에 인용된 것만으로 보아도 이 그림이 단순히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서만 그려진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는데, 실제로 작가인 오오타 텐요오는 이 그림을 그릴 당시 이미 전통화 부분의 독보적인 대가였기에 일본 해군 측의 다양한 자료를 참조해 그렸을 것이라는 점을 충분히 유추해 볼 수 있다.

이 기사는 멀티매니아 호비스트에서 발행하는 월간 PLATOON과 월간 NEO에 실린 기사로 사진과 글에 대한 저작권은 [멀티매니아 호비스트 www.e-hobbist.com]와 취재기자 김세랑에게 있습니다.

 

 

 

※ 일러두기 ※

 

1) 두정갑(頭釘甲) : 사극에서 가장 많이 소개되는 갑옷. 놋쇠로 된 못을 박아 만든 갑옷. 둥글게 파진 깃에 가슴 정중에서 합임 하는 모형으로 옆과 등솔 둔부 이하가 터져 있다. 겉감은 붉은색 전이고 속은 무명 세 겹을 누볐으며 하늘색 무문공단으로 안을 받쳤다

 

2) 환도 : 전통 무기의 도검류 중 하나. 환도는 조선시대에 사용되었던 도검류 중 대표적인 것이다. 따라서 당연히 전투에 사용하는 무기였지만, 그 외에도 국가에 공을 세운 사람들을 포상할 때나 의식에서의 시위용으로도 환도를 사용하였다.

도(刀)는 외날에 곡선이며 자루가 길고 칼집이 없는 반면에 검(劍)은 양날에 직선이며 자루가 짧고 칼집이 있는 병기를 말한다.

 

3) 수노기[手弩機] : 전통무기의 궁시류 중 하나. 수노기는 연노(連弩)의 일종으로 조선 후기에 훈련대장 신헌(申櫶)에 의해 제작되어 사용된 쇠뇌이다. 연노에는 방아쇠를 당기는 간단한 동작 하나로 적에게 한꺼번에 계속해서 화살을 퍼부을 수 있는 연발식과 여러 개의 화살을 동시에 발사할 수 있는 다발식이 있다. 수노기는 연발식 쇠뇌의 일종이다.

 

4) 전립(戰笠 : 모자 - 벙거지) : 조선시대의 모자 중에서 깃털달린 모자.

조선은 신분에 따라 쓰는 모자가 달랐고 때와 장소에 따라서도 다양하게 모자를 사용했다. 전립은 조선시대 무관이 착용하던 모자이다. 주로 군복차림에 사용하였으므로 전립(戰笠). 붉은 색 전(氈)으로 만든 홍전립(紅氈笠) 주전립이나 댓개비로 만든 죽전립(竹戰笠)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깃털은 용맹함을 상징하며 야외에서 활동을 할 때 쓰는 모자에 주로 사용했다. 그러다 보니 주로 무신들이 사용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5) 편곤[鞭棍](타격무기) : 전통무기의 타살무기류 중 하나.
편은 농가에서 사용하는 도리깨를 본 따 제작한 무기이고, 곤은 막대기를 병기로 변용시킨 것이다. 이것은 원래 중국 서쪽 오랑캐들의 무기였으나 한(漢)나라가 이것을 수용해서 더욱 발전시켰다.

 

6) 신기전[神機箭] : 조선시대에 제작된 로켓 화기. 고려시대 최무선(崔茂宣)에 의해 만들어진 우리나라 최초의 로켓 화기는 주화(走火)로, 조선시대에 들어와 1448년(세종 30) 여러 화기의 개량 때 신기전으로 바뀌었다. 〈국조오례서례〉 병기도설에 의하면 대·중·소 신기전과 산화신기전(散火神機箭)이 있었는데, 대신기전과 산화신기전은 규모는 비슷하나 약통과 발화통의 위치와 구조가 다르다고 했다. 대신기전에는 대신기전 발화통이 부착되어 있으며, 산화신기전은 대신기전 발화통을 사용하지 않고 지화(地火)와 발화(發火)를 묶어 넣어 사용했다. 중신기전도 소발화(小發火)라는 폭발물을 사용한 데 반해 소신기전은 폭발물을 사용하지 않았다. 문종 때 화차가 발명된 뒤 화차를 발사틀로 하여 신기전을 발사했다. 사정거리는 대신기전과 산화신기전은 1,000m 이상, 중신기전은 150m, 소신기전은 약 100m 정도로 보인다.